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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감춘 채 결국 퇴진|정호용 의원 앞으로의 거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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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 안팎으로부터 공직사퇴 압력을 받아온 정호용 의원이 29일 마침내 사퇴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청와대 여야영수합의의 첫 고리가 풀려 31일의 전씨 증언과 함께 연내 5공 청산의 목표가 달성되게 됐다.
정 의원 자신이 칭병 입원하고 있긴 하지만 사퇴성명을 짤막한 유인물로 대체하고 그마저도 당이 대리해 처리한 것은 여권의 제거공작 등 그 복잡한 언저리를 반증해 준다.
그의 사퇴 직전 박준규 민정 당대표위원이 「정계개편발언」파문으로 갑자기 물러난 것도 행여 정 의원의 마음이 변할까 의구심이 작용한 것이고 보면 사퇴 마지막 순간까지 파문이 계속된 셈이다.
○...군 병원에 사흘 째 입원중인 민정당의 정호용 의원은 29일 아침 그의 보좌관을 이춘구 총장에게 보내 의원직 및 당직사퇴 서를 전달, 일체의 처리를 위임함으로써 공직사퇴 절차를 끝냈다.
정 의원은 사퇴성명에서 그의 퇴진이 광주문제나 야당의 압력에 승복하는 게 아님을 강조했으나 정 의원 사퇴로 여권의 부담이 돼온 광주문제 해결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가게 됐다.
정 의원은 자신의 처신이 한 몸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대국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주장, 광주문제 책임이 아닌 명예퇴진임을 굳이 강조하고 있으나 정부·여당 측이나 평민 당은 이를 계기로 광주문제 수습에 들어갈 작정이다.
정 의원은 사퇴 직전 입원중인 서울시내 한 군 병원에서 문병온 그의 측근 수명에게 1시간 여에 걸쳐 심경을 토로.
그는 『모든 것을 다 훌훌 털어 내기로 했다』는 말로 의원직은 물론 민정 당 중집위원, 대구-경북도지부장직, 그리고 탈당까지 결행하겠다는 뜻을 암시했다.
또 그의 사퇴로 공석이 된 대구서 갑 구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뜻이 없음을 밝히면서 『기회가 닿으면 한동안 외국에 나가볼까 한다』고 말해 적어도 당분간은 정치에서 손을 뗄 것임을 시사했다.
정 의원은 『나중에 할말이 많을 것』이라고 해 정부·여당 특히 대통령과의 사이에 말못할 사연들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는데 이 같은 그의 태도를 사실상 정계은퇴로 해석하는 측도 있지만 이는 한시적이며 14대 총선전후를 통해 고백할 것이라는 여운을 짙게 풍기고 있다.
다음은 대화내용.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요.
『미련 없습니다. 다 털어 낼 겁니다.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 정치를 한 것도 아니고…. 연연할 이유가 없어요.』
-사후보장은 있습니까.
『남자가 떠나면 그뿐이지 뭘 구차하게 이러고 저러고 합니까. 남들은 내가 사퇴조건으로 친인척 배제 운운했다는데 그런 말은 한마디도 꺼낸 적이 없어요.
정동성 의원이 대통령 면담 때 월계수회를 거론한 모양이지만…』
-사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들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할말이 많겠지요. 그저 냉혹한 정치판에서 노 대통령과 40년 의리를 계속 아름답게 지키고 싶을 따름이오』
-사퇴는 진작 생각한 듯 한데, 최소한 대구에 내려가기 전에….
『지역구 동지들도 알만한 사람은 짐작했었지요』
-정계개편이 추진되는 모양인데요.
『그게 어디 엿장수 마음대로 됩니까. 나 그런 것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안 했어요. 일부인사가 김대중 평민당총재를 뒤에서 만나고 하는가보던데…. 나는 뒷거래에 관심 없어요. 할 줄도 모르고』(그는 『나는 이중플레이를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의 사퇴와 관련한 여권의 행태에 대한 불쾌감을 간접적으로 표현)
-다른 할말은.
『떠나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게 좋아요. 괜히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나요. 깨끗이 물러나면 되지』
정계주변에선 정 의원이 모든 공직에서 일단 물러나지만 결국은 컴백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다.
정 의원 본인은 『한번 물러나면 그뿐』이라고 은퇴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구민들의 추대형식을 밟아 돌아오리라는 추측.
정 의원 측은 확인하길 꺼리고 있지만 민 정당이나 노 대통령과의 사이에 무슨 묵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들이다.
그러나 야당 측은 정 의원의 정계복귀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여권 내 세력관계도 있어 그의 정계복귀 전망은 유동적이다. <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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