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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침해 땐 ``천직″ 아닌 ``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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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립인 서울K중 김모 교사(31·영어)는 요즈음 이번 학기를 끝으로 6년 동안의 교단생활을 그만 둘 생각을 굳혔다. 학원강사로 전업할 것을 염두에 두고 대학동창을 통해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김교사가 교직에 회의를 느낀 것은 지난해 12월 초. 동료 정모 교사(32·체육)가 수업 중 떠드는 학생에게 체벌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혔다.
당시 모든 교사들이 쉬쉬하며 사건을 덮어두려고만 했다. 이에 김교사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 조회시간에 『교사가 교육적 차원에서 체벌한 것은 이해가 되나 정도가 심하므로 교사 모두가 반성하는 뜻에서 구타교사를 징계위에 넘기자』고 제의했다.
이후 김교사는 금년 봄학기에 담임직을 박탈당했다. 김교사는 나중에 정 교사가 재단 이사장 측근으로 평소 학교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교사들이 정교사와 맞서기를 꺼려했는데도 체벌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으니 담임직 박탈은 되레 가벼운 보복이라는 얘기를 듣고 김교사는 이 때부터 교직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교조교사에 대한 징계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8월 초. 사립인 부산S중·인천S고·경기도Y고와 Y중 등은 교조교사를 징계하면서 노조탈퇴 교사와 노조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교사까지 무더기 징계처분을 했다.
Y중 김모 교사(30) 등은 『재단 측이 평소 재단비리 척결 등을 주장한데 대해 보복차원의 징계를 했다』고 말했다.
인천S고 고모 교사(33) 등도 『지난 2월 교사·학생들이 20여일 동안 재단퇴진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데 대한 보복으로 노조를 탈퇴한 교사도 징계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교사 10여명은 아직도 구제되지 않고 있어 전교조사태를 기회로 사립학교 재단들이 고분고분한 측근 교사만을 학교에 남게 해 앞으로 멋대로 학교를 운영하려는 처사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남J여상 심모 교사(39)는 재단비리를 폭로한 공개서한을 발표한 것과 관련, 재단측근인 유모 교사로부터 폭행을 당해 전치1주의 상처를 입고도 징계위에서 해임 당했으나 심교사를 때린 유교사는 정직 2개월에 그쳤다.
이 학교 평교사회가 밝힌 재단비리와 교권침해 사례는 모두 32건. 교사채용 때 2백만∼5백만원을 기부금으로 받았는가 하면 10년 전 퇴직한 서무직원 봉급을 계속 지불하는 등 갖가지.
또 1급 정교사 연수 때 출장비가 다른 학교에 비해 적은 것을 알고 이유를 묻자 교장이 사표를 강요하고 채용기부금이 적다고 서무과장이 증액을 요구했으며 평교사회 발족 전에는 여교사에게 가족수당 및 학비보조금을 지급 않다가 평교사회 발족 후 이를 지급하는 등 교사들을 사유물시하는 사립학교들이 많다는 문교부 관계자의 지적이다.
학부모들에 의한 교권침해도 적지 않다. 인천S고 이모 교사(25)는 지난달 하순 교무실에서 자기반 반장과 동료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부모 차모씨(35·여)로부터 뺨을 맞고 갖은 욕설을 들었다.
S고 교사들이 한국교총에 낸 진정서에 따르면 학부모 차모씨가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기말고사를 12월에서 2월로 연기했느냐』고 물어온 것이 발단.
이교사는 『확정된바 없고 그런 얘기들이 오갔을 뿐이다. 믿어지지 않으면 믿을 수 있는 교사에게 물어봐라』고 답변한 뒤 학부모와 이교사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이틀 뒤 차씨가 교무실로 찾아와 『내가 믿는 교사가 누구냐. 왜 사람을 모략하느냐』는 등 폭언을 하며 이교사의 뺨을 반장학생 등이 보는데서 때렸다.
교총이 지난 한해 동안 접수 처리한 것 중 교권침해 사례는 모두 45건으로 신분피해 30건, 학교안전사고 및 학사운영 피해가 각각 5건, 명예훼손 4건, 폭행피해 1건 등이다.
학교 급별로는 중등이 32건으로 가장 많고 대학 8건, 초등 2건 순이며 이 중 사립중등학교에서 19건, 사립대학에서 8건이 발생해 사립중등학교 교원의 신분안정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권침해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분피해는 임용권자의 인사권 남용, 법규의 부당한 적용 등이 주된 원인. 신분피해 30건 중 파면·해임·사전사표수리·해직 등 면직이 2O건으로 가장 많았다. 결혼 등을 이유로 사직강요 4건, 대학교수의 재임용 제외 3건, 직위해제 2건, 다른 시·도로의 전출 1건 등이다. 이 가운데 학내소요 및 교육정상화 활동과 관련된 집단 인사조치가 11건이나 된다.
또 교총 교권상담실에 서신·내방· 전화 등을 통해 상담한 사례는 총1천46건. 내용별로는 보수상담이 2백45건(24.4%)으로 가장 많았으며 인사 2백21건(21.2%), 자격의 취득·변경·연수상담 1백79건, 복무94건, 복지후생 및 근무조건 1백5건, 사적인 고충 등 기타 51건 등이다.
교육전문가들은 교권침해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분피해는 교육관련법규 및 제도상에 규정되어 있는 대학교원의 재임용제도, 면직사유가 되는 직무수행능력부족 등 해석판정이 불분명한 조항 ,재심 청구시 임용권자의 부당한 처분가능 조항 등이 폐지·개정되지 않는 한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성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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