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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 지자체 지원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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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하루 초.중.고교생 6백55만명이 먹는 학교 급식을 둘러싸고 중앙부처와 지방의회가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자칫 두곳이 법정에 서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질 전망이다.

전남도의회는 14일 본회의를 열고 '학교 급식 식재료 사용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재의결했다.

전남도지사가 안전하고 신선한 농.수.축산물 등 우수 농수산물이 학교 급식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필요한 소요 경비를 전남도 교육감이나 시장.군수에게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재의결된 조례는 지난달 25일 행정자치부에서 "도지사의 경비 지원은 소관 범위 밖으로 법령 위반"이라며 재심의 요구를 받은 내용 그대로다. 도의회가 행자부 지시를 무시한 것이다.

이에 행자부는 전남도지사에게 조례안에 대한 대법원 제소를 지시했다. 만일 도지사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11월 24일까지 직접 제소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뭐가 문제인가=학생들의 식단에 우수 농산물을 오르게 하려는 급식 조례가 만난 걸림돌은 현행 지방자치법 등의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분리 규정이다.

학교 급식과 관련된 업무가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시.도교육감 소관)'이기 때문에 시.도지사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게 행자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행자부 재정과 관계자는 "조례안이 농민들을 위해 우리 농산물 판매를 도와주고 학생들에게는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일반 행정자치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대법원 제소 등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만든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본부'는 행자부의 유권해석에 반발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가 일선 학교의 급식 시설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규정(시.군 및 자치구의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이 있는 상황에서 시.도가 급식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들은 "급식은 교육이자 주민 복지"라며 "행자부가 대법원에 제소할 경우 항의집회를 벌이며 조례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입장이다.

◇대안은 없나=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질질 끌고 있는 학교급식법 개정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경양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교육부가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달라는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시민들이 학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주기 위해 조례 제정이란 방법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급식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통합되기 힘든 상황이라면 시.도 등 자치단체의 교육비특별회계에서 경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값비싼 우수 농산물과 일반 농산물 사이의 차액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현재 전남과 같은 조례안을 제정하기 위해 시민단체나 지방의회가 나서고 있는 곳은 충북.제주.전북도와 나주.과천시 등이다.

학생들에게 안전한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학부모와 지자체들의 요구가 많아질수록 관련 규정을 둘러싸고 행자부와의 잇따른 마찰이 예상된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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