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터널 지난 학생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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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기대 입시 결과가 이틀후면 모두 판가름난다. 이미 상당수의 대학이 합격자 발표를 끝낸 상태여서 환희와 좌절의 희비 쌍곡선이 입시생을 둔 세모의 가정마다 가득차 있을 것이다.
대학 합격이 마치 인생 전부의 합격인양 환희하고 흥분할 수 없듯이 불합격이 곧 인생의 실패인양 절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
대학합격이란 대학교육의 첫발을 딛는 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녀들은 모두 이젠 그 지겨운 공부가 끝났다는 정신적 일탈감에 빠져 대학 4년을 허송한채 세계에서 「가장 공부 안하는 대학생」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있다.
배움의 시발을 배움의 종점으로 착각할 만큼 입시생들은 대학의 관문을 통과하기까지 어둡고 긴 시험지옥의 터널을 거쳐왔다. 그러나 합격의 영예는 학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라는 팽팽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새로운 도전일 뿐이다. 방만한 해방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차분히 생각하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합격이 또 하나의 도전이듯 불합격 또한 젊음이 맞이한 낯선 도전일 뿐이다. 젊은 시절의 실패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자극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실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자기확인이다. 그리고 그 실패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낙담했는가, 좌절했는가, 혹은 다시 용기를 내어 전진했는가, 여기에 따라 젊은이의 인생은 새롭게 결정될 수 있다.
용기는 극복함으로써 증대되고 공포는 주저함으로써 깊어질 뿐이다. 자녀의 대학실패를 자신의 아픔으로 맞이하고 있을 부모들도 함께 용기를 내야한다. 자녀의 좌절을 무모의 좌절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 좌절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함께 북돋워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는 각오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죄지은 듯 기죽어 있을 낙방생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제는 부모의 위로, 따뜻한 사랑일 것이다. 사랑과 위로로 그들의 멍든 마음을 다스린 다음 패인이 무엇이었던가를 냉정히 봐야 한다. 부모의 허영이 자녀의 학습실력을 뛰어넘어 무리한 요구로 강요되었던 것은 아닌지, 자녀의 적성을 무시한 무작정 지망은 아니었던지, 부모와 자녀간의 막힌 공간 속에서 공부하라는 채찍만을 내리쳤던 것은 아니었던지….
이런 모든 요인들을 해결한 다음 후기대를 지원하든 재수를 하든, 또는 전문대를 택하든 부모와 자녀와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막힌 통로를 열어 가는 따뜻한 애정의 교감이 절실할 때다.
60만명의 대학 낙방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 「어떤 기능을 갖추고 있느냐」가 젊은이의 미래를 가늠하게끔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다. 종래의 관성에 따라 자녀를 학력위주의 틀에 맞추기 보다 기능위주의 능력사회에 적응해나가도록 유도할 수 있는 부모의 지혜가 자녀의 절망을 극복하고 오늘의 교육병폐인 대학입시 과열현상을 치유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학력이 중요한게 아니라 기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대 원칙으로 세울 때 자녀의 진로는 보다 쉽게 선택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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