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미래] 올해 노벨물리학상 '초전도체'는 기차를 띄우고 암도 찾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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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물리학상이 초전도체 이론을 완성한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1911년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후 약 1세기 만에 이를 이용한 뇌자도(腦磁圖) 측정장치와 핵자기공명장치(MRI).초전도 자기부상 열차.초전도 전선 등이 잇따라 개발되는 등 초전도체 전성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의료.산업 등 전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초전도체의 세계를 탐험해 본다.[편집자]

난치병 중에 간질이 있다. 어느 순간 허연 거품을 내뿜으며 쓰러져 몸을 비틀어 대는 통에 주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병이다. 이는 뇌의 한 부위에서 강력한 전기가 발생해 뇌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리게 함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렇다고 전기의 세기가 1백10V나 2백20V에 감전될 때처럼 강한 것은 아니다.

단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정상적인 뇌활동을 할 때 생기는 전기의 수십 배에 달하는 전압이 뇌안에서 한 순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를 하든지 강력한 전기를 일으키는 뇌 부위를 도려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 부위를 찾아내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는 두개골을 연 뒤 전기를 감지할 수 있는 탐지 단추를 뇌 위에 직접 붙이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위험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꿈의 소재'로 통하는 초전도체를 이용해 최근 개발한 뇌자도 측정장치가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이는 뇌에서 전기가 발생할 때 덩달아 만들어지는 자기장을 감지하는 장치다.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있으면 되기 때문에 간질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기 전에 두개골을 열 필요가 없다.

뇌자도에 사용하는 초전도 자기센서는 어른 엄지 손톱 크기로 니오븀이라는 금속으로 만들며, 두께는 0.0001㎜정도로 얇다. 크기와는 다르게 감지 능력은 초능력에 가깝다.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는 힘은 지구가 가지고 있는 자석의 힘(지자기.地磁氣)인데, 이 힘의 1백억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극히 미약한 것까지 0.001초 단위로 잡아낸다. 초전도체 보다 더 정밀한 자기장 감지 능력을 가진 물질은 지구상에 없다.

뇌자도 장치를 임산부의 배에 대고 있으면 태아의 뇌가 모차르트 음악이나 철길 소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뇌자도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비롯해 미국.일본 등에서 개발됐다.그러나 아직 국내 병원 중에 설치된 곳은 없다.

뇌자도를 개발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용호 박사는 "초전도 현상은 약 1세기전 발견됐지만, 현재 응용되는 분야는 핵자기공명장치와 뇌자도 장치 등 의료기기에 주로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값이 아주 싼 액체 질소 속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물질이 다수 발견됨에 따라 운송.의료.전력.반도체.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 혁신을 일으킬 날이 머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초전도체를 자석 위에 놓으면 떠오르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다. 같은 극의 자석끼리 맞대면 서로 밀어내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본이 1998년 개발해 초전도 자기부상열차에 탑재한 초전도 코일은 한량당 30t의 객차를 10㎝ 정도 들어 올릴 정도의 강력한 전자석을 만들어냈다.

이 열차의 시험 운행 속도는 최고 시속 5백50㎞에 달했다. 철로의 마찰 등이 전혀 없어 비행기처럼 공중으로 가는 것과 같아 초고속 주행이 가능했다. 이는 서울~부산을 40여분에 주파할 수 있는 속력이다.

병원에서 많이 쓰는 핵자기공명장치의 경우 강력한 자석을 만들어야 제 기능을 한다. 자석의 힘으로 몸 속에 있는 수소 이온을 약한 자석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 이온 분포로 암 등을 판별한다. 초전도체를 이용하기 전에는 구리선을 썼는데, 열이 너무 많이 나서 구리를 둘둘 감은 부분을 찬물로 계속 식혀줘야 했다. 초전도선은 이런 열이 거의 나지 않는다. 전기가 흐를 때 저항이 없어지는 특성 덕이다.

최근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것이 초전도 전선 케이블이다. 케이블 중심에 초전도체로 만든 전선을 넣은 뒤 그 겉에 액체 질소를 넣어 냉각시켜 초전도현상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전기연구원 류강식 박사를 단장으로 한 차세대초전도연구개발사업단도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도 전선을 개발,국내에서도 조만간 상용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어른 팔뚝 만한 초전도 전선 케이블 한 선이면 수만가구의 중소도시에서 필요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구리전선 케이블로 송전할 경우의 5분의 1에 불과한 굵기다. 송전할 때 중간에 손실되는 전기량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고성능 초전도체의 개발에 따라서는 반도체의 집적도를 지금보다 서너배 높일 수 있고, 노트북 만한 수퍼 컴퓨터도 만들 수 있다.

지난 9월 삼성전자가 개발한 4기가비트 플래시메모리반도체의 회로선폭(線幅)은 머리카락 굵기의 14분의1 수준. 그러나 더 많은 용량을 집적하려면 회로에서 나오는 열을 해결하지 않고는 곤란하다. 회로가 열에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전도체를 이용하면 그보다 서너배 이상 용량이 큰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다. 이외에도 초전도체는 스크루 없는 초고속선, 마찰없는 베어링, 케이블이 필요없는 엘리베이터 등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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