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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마음으로 돌아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스크루지 아저씨는 다음날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망령이 보여준 자신과 가난한 이웃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탐욕의 세계가 인과할 자기 스스로의 처참한 종말과 함께 자신의 변신이 가져올 수 있는 축복의 가능성을 두루 살펴보고 축복의 세계로의 변신을 선택한 것이다.
찰스 디킨스가『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이래 『성경』다음으로 크리스마스가 상징하는 사랑,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박애 정신을 거듭 일깨워준 이 이야기는 종교의 벽과 국경의 벽을 넘어 온 세계 인류들에 지금까지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현실세계는 물론 그런 디킨스의 감격스러운 충격과 변신으로 사랑과 선린을 지향하지는 못한다. 관용의 세시가 지나고 나면 그나마 자신과 이웃을 되돌아보고 거듭나기를 다짐했던 결의는 세속의 일상에 파묻혀 앞뒤를 가리지 않는 생존경쟁 속에 파묻혀 버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이라도 세속을 초월한 눈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둘러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소중한 체험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기독교인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이 좁은 지구 위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로서의 사랑과 희망이라는 보편적 가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예년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넘어갔다고 들린다. 우려했던 과소비의 풍조도 적어도 겉으로는 크게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불우 이웃을 찾아 위로하고 물질적 보탬을 베푸는 모습도 크게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아쉬움을 남긴다.
크리스마스가 고난과 고통받는 이웃을 사람으로 위하는데 그 근본정신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스크루지 아저씨와 같은 변신을 조금씩이라도 보여 세모가 다 가기 전에 이웃을 돌보고 고난과 고통을 나누어 갖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산업혁명기의 축재를 향한 끝없는 탐욕과 부의 편중현상에 일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나눔」과「베품」의 사랑이 산업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정신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준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도 절실한 소구력을 갖고 있다.
70년대 이후의 산업화과정 속에서 왜곡된 사회경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나눔과 베품의 정신의 보편화만큼 긴요한게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주체가 지난 고도성장기에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중산층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모두 전쟁을 겪고 참담한 가난을 겪고 일어선 계층이다.
적어도 중산층으로 터전을 굳히기까지는 그들도 이웃을 돌볼 겨를 없이 자신과 가족을 가난의 속박으로부터 탈출시키는데 전력을 다한 계층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웃을 돌볼 여유를 얻었다. 거기서 「가진자」가 마땅히 발휘해야할 도덕적 금도를 보여야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는 사실이 그런 마음가짐의 씨앗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지난 한해를 갈등과 불신으로 살아온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도 이 휴식의 계절을 맞아 각박한 현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와 이웃과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새로운 자각과 변신으로 밝아올 90연대의 새 아침을 향해 옷깃을 여미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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