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젊은 할머니' 는 외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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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할머니' 박진심(61.(左))씨와 이미영(60)씨가 이화여대 종합사회복지관에 개설된 컴퓨터 기초반에서 또래 수강생들에게 인터넷 검색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월요일 수지침, 화요일 자원봉사, 수요일 스포츠댄스와 컴퓨터, 목요일 자원봉사, 금요일 하모니카.가곡.한국무용….

채정자(63.여.서울 사당동)씨의 일주일 스케줄이다. "이제야 인생이 내 몫인 것 같다"는 채씨는 세 남매를 키우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런 그가 '내 인생'을 찾기 시작한 건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결혼한 뒤부터. 자식을 키우느라 미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 쉰여덟 늦깎이 신입생으로 남서울대학 아동복지학과에 들어갔다. 지난해 대학 졸업 뒤엔 복지관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배우기에 바쁘다. 채씨는 "요즘이 내 전성시대"라고 자랑했다.

'젊은 60대 할머니들'이 새로운 삶 찾기에 나서고 있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바빠 집 안에 머물던 '할머니들'이 '잃어버린 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하는 일 없이 집에서 쉬거나 경로당이나 나가던 이전 세대의 '할머니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시아여성연구소 오경희 책임연구원은 "60세쯤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엔 이를 적극적인 활동으로 극복해 나가려는 여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컴퓨터와 봉사 활동으로 새 인생=60세 전후, 중년의 끝자락에서 어머니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학구열과 도전 의식에 다시 불탄다.

이미영(60.여.서울 공덕동)씨는 요즘 엑셀과 파워포인트 공부에 여념이 없다. 12월 있을 워드프로세서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컴퓨터를 켜고 끌 줄조차 몰랐던 '컴맹'이었다. 그런 그의 삶이 바뀐 건 지난해 가을 동네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부터다. 그는 "딸한테 '그건 구글에서 찾아봐'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구글도 아느냐'며 깜짝 놀라더라"며 "컴퓨터를 배우니까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불면증과 소화불량까지 싹 사라졌다"고 즐거워 했다.

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동아리 '동그라미'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말복(69.여.서울 상도동)씨. 4남매를 키우느라 쭉 집에만 있던 김씨는 7년 전 눈 수술을 하면서 '내 여생을 재밌게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활동하니까 나도 쓸모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죽을 때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 독신자 실버미팅=6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한 재혼 정보업체가 연 '실버황혼미팅' 행사가 열렸다. 50대 후반부터 70대까지의 독신 남녀 80여 명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참가 신청자 중 7대 3으로 여성이 많아 비율을 조정했다"며 "90%는 본인이 직접 전화로 신청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미팅에 참석한 황모(61.여.서울 묵동)씨는 "애들에게 행여 누가 될까봐 누구를 사귈 생각을 못했다"며 "이제 손자.손녀 다 보고 여유가 생겨 처음으로 미팅을 신청했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고 수줍게 웃었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자녀가 취직이나 결혼을 해 떠나가면서 주부들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게 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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