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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중계권 갈등' KBS·MBC - SBS 왜 싸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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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결정적 계기는 SBS가 제공했다. 자회사인 SBS 인터내셔널이 올림픽과 월드컵의 중계권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KBS와 MBC는 "중계권료만 올려 놔 국제 무대의 '봉'이 됐다"며 SBS를 융단 폭격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가에선 어차피 터질 문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중계권 시장은 대기업과 스포츠 마케팅 업체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혼전 양상이다. 반면 지상파 3사의 공조는 취약한 상황이었다. 약속이 깨진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흥행과 시청률 앞에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동거'였다는 얘기다. 이제 방송가의 이목은 SBS의 '도발' 자체보다 앞으로 어떤 양상이 전개될 것인가에 더 모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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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SBS '난타'한 KBS.MBC=SBS의 중계권 독점 사실이 알려진 지난 3일부터 KBS와 MBC는 뉴스를 통해 SBS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는 더 세졌다. "방송사들이 공공재인 전파를 지나치게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올 정도였다. 특히 KBS는 일주일 넘게 메인 뉴스에서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자사 이기주의에 함몰된 상업방송'(3일) 'IOC에 놀아난 SBS'(5일) '공영방송을 유린하겠다는 전략'(8일) 등 자극적인 제목 일색이었다. MBC 역시 '뉴스데스크'에서 'SBS인터내셔널=수수께끼 회사'라는 보도까지 내보냈다.

이들은 SBS가 방송 3사의 공조를 깨는 바람에 중계권료만 폭등시켜 놨다고 주장했다. SBS는 2010~2016년 올림픽 중계권을 이전보다 109% 높은 가격에 계약했다. 2010~2014년의 월드컵 중계권도 2002~2006년에 비해 117% 오른 가격이다. KBS와 MBC는 이런 점을 부각시켜 '국익은 외면한 채 상업주의에만 빠진 SBS'라고 공격한 것이다. 이에 맞서 SBS는 '올림픽 중계권 확보는 불가피한 선택'(8일)'스포츠 중계권 공방, KBS의 자가당착'(10일) 등의 보도로 맞불을 놨다.

◆"중계권을 잡아라"=중계권 논란이 왜 뜨거운가. 방송사가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스포츠가 높은 광고 수익 등을 보장하는 '킬러(killer)콘텐트'이기 때문이다.

독일 월드컵 토고전의 15초 광고 단가는 MBC 2545만5000원, SBS 2506만5000원으로 같은 시간대 일반 광고 요금(800만~1200만원)의 두 배가 넘었다. 월드컵 관련 특집물의 광고도 기존 프로그램의 110~120% 수준에서 정해졌다.

단순한 지상파만의 문제도 아니다. 케이블과 위성, DMB(디지털 이동 멀티미디어 방송)나 IPTV(인터넷 TV) 등 다양한 뉴미디어 매체의 등장에 따른 콘텐트 확보전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여러 매체에 나눠 팔 수 있는 콘텐트의 확보가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SBS인터내셔널은 실제 지상파.케이블.위성.DMB.IPTV.모바일 서비스(와이브로 등).극장.전광판 등 온.오프라인과 뉴미디어 부문을 아우르는 중계권을 확보했다.

중계권 협상에는 대기업과 스포츠 마케팅 업체, 뉴미디어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IB스포츠'가 지상파를 제치고 메이저리그 중계권 등을 확보한 게 대표적인 예다. 경쟁이 치열하니 가격은 오르게 마련이다. SBS는 "이번 올림픽 중계 협상에서 국내 한 대기업이 900억원 이상을 제시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윤호진 연구원은 "앞으로 콘텐트를 잡기 위한 쟁탈전이 가열되면서 방송사나 대기업.스포츠마케팅 업체 간의 이합집산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붕어빵 편성'도 도마 위에=올해 독일 월드컵의 경우 "어디를 돌려도 축구만 나온다"고 할 정도로 '싹쓸이 편성'이 극에 달했다. 방송위원회가 11일 발표한 '2006년 독일 월드컵 편성 분석 결과'를 보면 총 64경기 중 54경기가 같은 시간에 전파를 탔다.

이런 문제점들은 그간 많이 제기됐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어느 방송사도 광고 수익을 놓치려 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최근 방송위가 방송사들의 '붕어빵 편성'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끈다.

방송위는 "방송법상 의무편성비율 관련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중복 편성 가능성을 미리 막는 등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중계권을 싹쓸이한 SBS도 '순차 방송'을 통해 방송사가 같은 경기를 내보내는 폐단을 고치겠다고 나섰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도 방송사가 순서를 정해 주요 스포츠 중계를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중계권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계 방식을 놓고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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