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청산을 누가 막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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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5일 청와대영수회담의 대안협으로 그 지긋지긋하던 5공 청산이 마침내 올해로 끝나는구나 했더니 합의사항의 구체화 과정에서 또 이런저런 말이 많고 연내종결이 어렵다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연말이라고 해야 이제 열흘도 남지 않은 촉박한 사정이니 꼭 연말이란 시한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90년대까지 이 신물나는 문제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다는 국민적 기대를 정치권과 백담사측등 관련 당사자들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리는 대안협의 구체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걸리고 대안협의 합의사항 자체에도 엄밀성의 결여에서 오는 문제점이 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전대통령의 증언이나 특정인의 공직사퇴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시 4당간 또는 당사자를 상대로 하는 별도의 절충과 합의가 나와야 하는 사정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타협이 나온 후 지난 1주일간의 과정을 보면 각 당사자들의 자세에 있어 마땅치 않게 여겨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무엇보다 대국적 차원에서 올해 안에 문제를 끝내자는 것이 국민 여망이며 대타협의 정신인데도 여기에 부응하자는 정성과 진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정성과 진지한 자세가 있다면 아예 중계방식을 둘러싼 말썽도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고 서면질문을 만드는데 4당이 1주일씩이나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담사 측으로서는 이번의 국회증언이 매우 중요하고 국민에게 최대한 성실하게 증언할 필요성을 느끼는게 당연하다. 1백개가 넘는 질문에 성실한 답변서를 만들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함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증언이 새로운 논란의 시발이 아니라 문제의 마무리에 뜻이 있고 그것도 며칠 남지도 않은 금년 안에 마무리하자는 것이 국민여망이요, 정치권의 합의인 이상 거기에 좀 템포도 맞추고 행보도 빨리하는 모습을 보여야 옳을 것이다.
답변서를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고 노 대통령과 감정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늦어진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치권도 좀더 열성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어렵게 벼랑 끝에 와서야 겨우 대타협을 해놓고 이제와 그것을 성사시키는데 있어 자질구레한 이견으로 시일을 끌고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전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에 있어 보충질의의 방식을 놓고 합의를 못 보는 것이나 서면질문서 작성이 늦어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정치권이 정신을 덜 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타협을 이뤄낸 그런 자세와 절박감이 구체화 과정에서도 지속돼야 한다.
전대통령의 증언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우와 인기를 노린 돌출적 해프닝의 배제보장, 증언후의 정치적 종결처리 합의등 정치권의 빠른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
이번에 보면 여권에 특히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자기들이 처리해야할 부분인 특정인 사퇴와 백담사측의 증언실현을 위해 필요한 정리작업이 거의 돼있지 않은 상태다. 어떻게 했길래 「위약」이니 「불편한 관계」니 하는 말이 자꾸 들리고「노-전 대담」이니, 협조요청 거부니 하는 듣기거북한 소리들이 잇따라 나오는가.
특정인에게 기관원 미행을 시키고 감시를 붙이는 따위의 시대착오적 행태까지 등장하다니 우리는 여권내부의 한심한 사정과 리더십에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5공 청산을 연내로 끝내자면 이제 시간도 부족하고 사정도 여러 가지로 복잡하지만 관련 당사자들이 마음을 비운 큼직큼직한 처신과 합의로 국민기대에 부응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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