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협 정국(하) 「5공 청산」 노 대통령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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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은 고민이 많다.
청와대회담을 통해 가까스로 야당총재들과 5공 청산원칙을 합의해 놓았으나 정호용 의원이나 백담사측 등 여권내부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여당사상 처음으로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여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노 대통령이 집권2년만에 가장 큰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과거문제로 지난2년을 허송하고 나니 이제 일할 수 있는 날이 임기 마지막 해를 뺀다면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해야할 일은 태산이다.
경제위기·대도시교통난·민생치안·환경오염 등 그 동안 방치했던 분야가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5공 청산의 대타협 이후의 정국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모두들 궁금하게 지켜보고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은 발등의 불을 꺼야한다. 전씨 증언도 대통령이 「권유」토록 되어있고 정호용 의원사퇴도 그가 「처리」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라도 삐끗해 이른바 「대타협」이 무너지면 모든 책임이 노 대통령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청와대측은 사태추이를 낙관하고 있다. 백담사의 불만이 없지 않겠지만 국회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정 의원측도 한때 40여명이 집단서명 동조했다고 하나 결국 다 떨어져 나갔고 정 의원도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현재의 사태진전은 그렇게 낙관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전씨측은 사태가 여의치 않아 증언이 불가피하면 노 대통령이나 6공 정부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사실대로」증언하겠다는 생각이며 최규하 전 대통령은 증언하지 않도록 하겠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데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 의원측도 노·정회동의 내용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자폭성 조치도 강구하고 있는 듯 해 5공 마무리작업은 아직 살얼음판이다.
만약 정 의원측이 반발하면 대타협의 합의는 무너지고 정국은 다시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이며 노 대통령은 리더십에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청와대측은 겉으로의 낙관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정부와 민정당을 독려해 사태를 마무리하느라 안간힘을 쓰고있다.
사태가 수습이 되더라도 노 대통령이 안고있는 과제는 만만치 않다.
위기설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 있게 느껴지는 내년 봄 정국을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정간에는 국가명운의 고비가 될지도 모르는 사태를 앞두고 당정의 대폭적인 쇄신과 결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노 대통령정부는 그 동안 여권을 「축소 지향적」으로 운영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즉 지지기반에서 보수·중도를 확실히 하지 못한 채 야당과 여론과 인기에 떼밀려 다니다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6공 핵심부가 청와대나 민정당 지도부 중심으로 움츠러들어 소수화 하도록 만들어 여권내부의 보수세력이 불만을 가지고 따로 모이고 5공파들이 큰소리치며 활개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민정당 내부에서도 개혁조치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친·인척 배제주장을 배후에 깐 당정대폭 쇄신론이 제기된 것이라는 풀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으로서는 인사쇄신이나 통치스타일의 변화로 이에 대처해야하며 범 여권결속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들이 순조롭게 풀리면 노 대통령은 6공 집권2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나가면서 정국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기대한 대타협의 성과는 이에 대비하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은 과거의 부담을 벗어버린 지금부터는 정부·여당이 정치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석을 하고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상황인식을 토대로 노 대통령은 행정부나 당에 대해 좀더 확고한 친정체제를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당정개편도 이러한 친정체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앞으로의 당정개편에는 여소야대를 극복하는 결단이 숨어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의 내각참여나 연정 등 정계개편이 그것이다.
일부에서는 성급하게 민정당과 공화당의 합당 얘기가 나오며 김종필 총재와 김영삼 민주당총재의 밀월도 정계개편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청와대영수회담합의사항의 이행을 전제한 것인 만큼 5공 마무리 수순외 순탄한 진행여부가 모든 문제의 관건이다.<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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