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휴먼골프 <18> 가수 조영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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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필자와 함께 라운드한 조영남(右)씨.

"사람들이 마음 놓고 무모한 짓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 골프장이죠." 얼마 전 가수 조영남씨와 곤지암CC에서 라운드하면서 '도대체 골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나온 말이다. 400야드 가까이 되는 잔디밭에서 쇠 작대기로 공을 쳐 네 번 만에 조그만 구멍에 넣으려는 것부터 무모한 짓이고, 모래에 박혀 있는 공을 쳐내 그린에 올리려는 것도 무모한 짓이란다.

울퉁불퉁한 그린 위에서 공을 굴려 몇m 앞에 있는 작은 컵에 넣으려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새벽부터 산속을 걸어다니고 30도가 넘는 땡볕 속에서 내기에 몰입하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그런데 이런 무모한 짓은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들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점잖은 어른들이 어린애처럼 놀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바로 골프장"이란다.

나는 그가 십여 년 전에 쓴 '놀멘 놀멘'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북 사람인 그의 부친이 즐겨 쓰던 말씀이 "놀멘 놀멘 하라우(놀면서 해라)"였다고 한다. 놀 줄 모르는 '범생이'들이 지도층 인사가 되고, 놀 줄 모르는 운동권 출신이 정치인이 되니까 세상이 험악해지고 빡빡해 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골프는 5년 전 탤런트 이경진씨가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다고 강권을 해 시작했는데 요즘 90타 전후를 친다고 했다.

체계적인 코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스윙 폼은 다소 독특했는데 공에 대한 집중력이 좋아서 티샷의 페어웨이 안착률이 높았다. 그가 티샷할 때마다 동반자들은 폭소를 터뜨려야 했다. 그는 마치 연극대사 외우듯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시를 하고 있었다.

"영남아, 팔을 끝까지 뻗어라" "영남아, 머리 들지 말고 오른쪽 어깨 집어넣고"….

보통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는 이런 주문을 큰 소리로 내면서 자기 최면을 거는 걸 보니 역시 평범한 개성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나보고 즉흥적이라느니, 럭비공 같다느니 얘기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지. 나는 인생은 경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화투 그림 그리는 사람 봤어요?"

가수로 데뷔한 그는 화가로, 방송인으로, 작가로, 칼럼니스트로 파격과 변신을 주저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문화 유목민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가수가 노래나 하지, 왜 책 쓰고 그림 그리고 방송하느냐 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고정관념이에요. 한 구멍만 파야 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넓은 세상에는 여러 구멍을 파는 게 좋잖아요. 골프장도 홀마다 다르고 골프채도 서로 다르니까 작품이 되는 거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샷을 하는 사이사이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 누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배를 잡고 웃는다. 그는 순식간에 감정을 공유하는 공감형 엔터테이너다.

그에게 골프를 시작한 뒤 좋아진 게 뭐냐고 물어봤다.

"인생경영을 배우죠. 성깔도 죽이게 되고 같이 놀아 주는 동반자들이 진짜 고맙죠. 고마운 사람 많은 걸 알면 저절로 건강해지는 거 아닙니까. 하하~." 오늘의 원 포인트 레슨=골프는 동심의 놀이터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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