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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복수정당제 - 대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만에서 사실상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국민당이 집권 40년만에 실시한 「복수정당제」에 의한 선거는 집권당에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나는 한편 몇가지 점에선 한국정치와 상당한 대조를 보여주었다.
경제정책에서도 대만은 중소기업이, 한국은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온 양국간의 차이점이 정치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대만은 이번에 국회격인 입법원을 비롯, 성·시·현 등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를 동시에 실시했으나 열기와 관심이 집중된 것은 현(우리나라의 군)·시장을 선출하는 것이었다.
입법원보다 현·시장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입법원 자체가 별다른 정치적 역할이 없는데다 다수의원이 종신제로 버티고있는 한계 때문이다.
따라서 냉철히 보자면 대만의 선거는 전국적 선거라기보다는 지방선거의 색채가 짙다.
대만에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미약하고 전국적인 정치지도자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한국의 야당을 대표하는 「3김」이 각자의 지방적 기반을 분명히 하고있으면서 전국적 비중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대통령직선이라는 제도에 의해 크게 부각될 수 있었던 점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종신제 대표들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민대회를 통해 총통을 선출하는 대만의 현 제도에서는 정권교체는 물론 전국적 영향력을 갖는 야당의 인물이 배출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치평론가이자 대만의 시사주간지 신신문 발행인 장춘난씨(강춘남·46)는 『현행제도가 개정되지 않는 한 대만의 정치가들은 영원히 지방적 인물로밖에 성장하지 못할 것』이며 현 제도아래에서의 선거는 『마치 교사(국민당 정부)가 운동장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운동(선거)을 시키다 적당한 시기에 호루라기를 불어수업을 시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는 49년 대만으로 넘어온 국민당이 여전히 「전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논리를 펴 전국적 권한을 독점하는 한편 대만자체는 1개 성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양국의 정당도 한국이 이념이나 원칙·목표보다는 인물중심으로 부침해온 데 반해 대만쪽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목표·원칙을 가지고 지도자 개인의 영욕과 관계없이 그 조직을 계속해오고 있다.
창당 70여년 역사의 국민당이 쑨원(손문) 장제스(장개석) 장징궈(장경국) 리덩후이(이등휘)로 내려오면서도 강력한 생명력을 갖고 그 창당이념을 살려가고 있다.
야당도 비슷한 양태를 띠고 있다.
창당3년의 대만 민진당이 그동안 주석(총재)을 여러번 교체했으나 당의 이념이나 목표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의 야당은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해오고 있다.
선거제도 등으로 대만에 강력한 야당을 이끌만한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고있다는 점은 한국과 다른 점이고 이 때문에 민진당이 주석은 교체돼도 당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는 역설도 근거를 갖는다.
그만큼 대만의 야당은 아직도 심리적으로 국민당과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선시키려는데 주력하는 초보적 단계에 머무르고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만·중국대륙·홍콩·싱가포르 등 중국인사회나 국가를 통틀어 처음으로 진정한 야당이 결성되고 복수정당 정치의 기초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없으며 이 점에서 지난번 대만의 총선거는 역사적인 정치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홍콩=박병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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