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나우이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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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여대생이 복면을 하고 가스총을 들고 슈퍼마킷에 들어갔다. 물론 장난이 아니다. 돈을 털 목적이었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 동기가 맹랑했다. 안경을 살 돈이 없었다.
강원도 한 작은 도시에서 어느 고교생은 길 가던 사람에게 담뱃불을 청했다. 10년 연장인 그 사람은 불을 붙여주기에 앞서 학생을 나무랐다. 순간, 화가 난 고교생은 두말 않고 길옆의 돌을 집어 내리쳤다. 그 사람은 생명을 잃었다. 이런 경우 도덕의 기준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고교생이 담배 피우는 것은 시비거리도 못되지만 연장자에게 담뱃불을 요구하는 것은 좀 다르다. 비록 노상이라도 아직은 그런 일을 쉽게 용납할 만큼 도덕의 나사가 풀리지는 않았다.
망년회비, 연말 유흥비를 장만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날치기를 하다가 붙잡힌 아이들의 얘기는 처음 듣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고교생이 역시 고교 여학생과 동거하면서 사글세 방 값 낼 돈을 구하기 위해 길가는 여대생의 핸드백을 낚아챘다는 얘기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고교입시를 끝낸 중3 학생들이 심야 누드쇼를 하는 디스코테크에 가서 술을 마시며 구경한 것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해프닝인가.
어느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은 교내 연극 반에서 후배가 배역 맡은 것을 시샘해 그를 목졸라 죽였다.
아무리 청소년 범죄라지만 그 모티브들이 너무 어이가 없다. 사람의 목숨은 순간의 판단에 달렸을 뿐이다. 모두가 순간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찰나주의다.
미국신문들은 요즘 「나우나우이즘」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나우」(Now)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뜻이다.
그런 찰나주의는 일정한 가치체계가 부서진 위기의 시대에 나타나는 쾌락주의의 하나다. 과거나 미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순간의 도취와 쾌락만을 유일한 가치기준으로 삼는다.
그 결과는 방탕과 소비와 데카당스로 나타난다. 선도, 도덕도 그 기준을 궁극적으로 쾌락에서만 찾는다. 이런 가치세계에선 범죄의 동기가 맹랑할 수밖에 없다.
자, 세상은 이럴진대 우리의 정치나 교육은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는가. 이들 마저 오늘에 집착하는 찰나주의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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