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기는 전교조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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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0년대를 관철해온 우리사회의 변혁운동이 유난히도 몸살을 앓았던 89년.
그중에서도 전교조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그 진통을 90년의 문턱너머로 이월시키고 있다.
이 해도 20일을 채 못남긴 11일 저녁부터 40여시간동안 6백여명의 해직교사들이 서울시내 경찰서 즉심보호실을 가득 메웠던 또 하나의 전교조파동.
이들은 명동성당에서 「전산조합법성쟁취및 해고교사 복직을 위한 결의대회」 를 마친후 문교부에 항의하러 갔다가 연행됐었다.
이날 해직교사들의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인 행동은 전교조 와해를 자신했던 당국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음에 틀림없다.
13일 낮12시 마포경찰서.
서울·부산·경남등 전국7개 지역출신 해직교사 58명은 『집으로 가라』 는 석방결정을 듣고서도 『이번 일을 자체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며 토론회를 갖는등 1시간30분동안이나 출소를 거부했다.
이들은 12일 아침부터 단식투쟁하면서도 각지부 탄압사례발표, 토론, 동지가·단결투쟁가등 노래제창의 프로그램을 짜임새있게 진행했고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는 격렬한 구호를 외치기까지 했다.
『꼭 노조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교육계 비리를 씻어낼수 있는 개혁이 있어야 하고 이를 담당할 조직이나 기구가 있으면 됩니다. 그게 되질 않으니 전교조에 매달리는 거죠. 우리는 개혁주의자입니다. 이단아로 보지마세요.』
보호실을 나서는 이근화씨(26·전서울미성중교사·역사)의 하소연은 진지했다.
당국과 전교조의 강공책이 만들어낸 1천6백여명의 해직교사들. 이들을 언제까지나 「미운 오리새끼」 로 방치할 것인가.
세밑에 겪는 전교조소동은 정치권에, 문교부에, 동료교사에게, 그리고 학부모에게 이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김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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