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총각 장가 좀 갑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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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농촌총각들이 결혼대책위원회 준비위 (위원장 장기갑·39·농업) 를 결성하고 농부의 배필이 될 처녀들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13일 서울신문로 전국농민운동연합 사무실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각지역 준비위원들이 임시연락소를 차리고 이날 오후부터 서울 구로동 여성노동자회등을 방문, 도시 여성근로자들과 농촌총각들과의 소개및 교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결혼대책위원회 준비위는 6월24일 대전시 가톨릭농민회관에서 농촌총각 50여명이 모여 만들어졌고 이미 경남 사천, 전남 해남, 강원 화천등 20여개 군에 지부가 결성돼 내년 2월에는 정식 결혼대책위원회가 출범할 예정.
『도시사람들은 장가못가 미친 놈들이라고 비웃을 겁니다. 하지만 결혼못해 자살한 농촌총각이 금년에만 30명이 넘습니다. 농사짓는다고 장가못가는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농촌에 태어났기 때문에」 나이 40이 다되도록 총각이라는 위원장 강씨는 『민망하고 창피하지만 농촌총각들이 죽기까지 하는걸 보고만 있을수 없어 결혼대책위를 만들게 됐다』 고 말했다.
강씨등은 13일 『농촌은 정이 넘쳐흐르는 순박한 곳으로 농촌의 새댁은 한가정뿐 아니라 온동네의 사랑을 받는다. 농촌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자』 는 설명이 첨부된 신청서 2백여장을 여성근로자들에게 돌렸고 여성연합회·노운협 등에도 협조를 요청, 농촌총각과의 결혼장려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여성근로자들이▲좋아하는 남성관▲결혼후 계획▲거주희망지역등을 써내면 결혼대책위에서는 남자회원들중 가장 적합한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각종 모임등을 통해 서로를 알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강씨는 『농촌에선 아기울음소리 듣기가 힘들정도가 돼버렸다』 며 『농촌은 꿈과 미래를 잃어가고 있어 이대로 방치하면 망한다』 고 말했다.
한국보건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89년 20대 농초총각은 69만명이나 같은 나이의 농촌처녀는 21만여명이며 격차는 해마다 심해져 농촌 총각의 결혼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 다.
『정부의 무분별한 공업화 정책과 살농정책이 오늘날 농촌현실의 주범입니다.』
어수룩한 표정이던 강위원장은 농촌총각들의 결혼난 이유에 대해 단호히 정부의 책임을 들었고 『그것은 모든 농촌사람들의 의견』 이라고 말했다.
농가 호당 5백만원 이상의 빚더미에다 수입개방정책등으로 점점 농산물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현실, 농약중독에 시달리는 농민등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강씨는 『농민들은 결국 이 모든 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결론짓게 되고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강씨는 또 『신청서를 돌리긴 했지만 농촌이 싫어 떠난 처녀들이 도시의 물질·향락을 맛본뒤다시 농촌으로 되돌아 와줄지 걱정된다』 며 『시대가 바꿔어도 농자천하지대본』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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