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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이혜원 커플의 섬머 가든 데이트

중앙일보

입력

언제 봐도 화려한 커플입니다. 너무도 예쁘고 잘생긴 커플이라 때로는 세상 사람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화려한 룩(look)과 이미지가 그들의 진짜 모습은 아닙니다.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안정환 선수 가족의 어느 여름날 오후 풍경을 담았습니다.

When a man loves a woman

과연 듣던 대로, 이제 갓 두 돌을 넘긴 리원이는 정말 시들지 않는 에너자이저였다. 리원이가 뛰기 시작하면서부터 외출복 리스트에서 치마를 지워버렸다는 엄마의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축구 선수 아빠의 DNA가 대물림된 게 확실한 리원이의 민첩한 움직임과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바지와 스니커즈는 필수품. 낮잠 한숨 푹 재우고 정원에 풀어놨더니 한여름 오후의 맹렬한 햇빛 사이로 이리 폴짝 저리 폴짝,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잘 때 말고는 늘 저렇게 뛰어다녀요. 보통 아이들은 앞으로만 뛰던데, 리원이는 운동하는 사람처럼 옆으로도 막 뛰어요(웃음). 얼마나 날쌘지…, 축구 선수의 아이들이 대체로 그렇다네요. 독일 뒤셀도르프 집 근처에 라인강이 있어요. 매일 1시간씩 라인강변을 따라 조깅할 때면 리원이도 운동화 신고 나란히 뛰죠. 안아달란 투정도 없이, 똑같이 달린다니까요.”
나고 자란 곳을 향한 그리움은 비단 어른들만의 감정이 아니었나보다. 우리말 쓰는 사람들이 반가워 새순 같은 얼굴 가득 좋아라 함박웃음 피워내는 리원이를 보면서 이국 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의 가슴에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구나, 마음이 짠해지더라는 안정환·이혜원 부부. 월드컵이 끝나고 모처럼만의 서울행이다. 16강 진출 실패 후 한동안 심적으로 패닉 상태였던 아빠는 리원이의 그칠 줄 모르는 ‘말 걸기’에 기분 전환이 된 듯했다.
“뭐, 다 예쁘죠. 안 예쁜 구석이 없어요. 경기 중에는 자주 못 보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많이 놀아주려고 해요. 회사원처럼 출퇴근이 일정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림도 그려주고, 요즘 한창 호기심이 많을 때니까 세상 구경도 시켜주면서 같이 놀죠.”
운동선수라는 직업은 남편과 아빠로 살아가는 남자에게 더러 불편을 끼치기도 한다. 게임이다 훈련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마음처럼 흠뻑 사랑을 전하지 못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절대량의 부족을 만회하는 길은 퀄리티를 높이는 것뿐. 소통의 창구를 확장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가 부지런히 실천 중인 방법은 틈틈이 전화하고 편지 쓰기. 대략 하루에 30번쯤 통화하고 아내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는 간단한 쪽지와 장문의 편지를 넘나든다.
“아유, 이건 사생활인데…(웃음). 아내가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연애할 때부터 그걸 봤더니 자연스럽게 닮게 되더라구요. 지금이야 리원이가 있어서 좀 낫지만, 신혼 때는 내가 운동하러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니까, 재미거리를 주고 싶었어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간단하게 끄적거리고 화장대나 부엌에 숨겨 놔요(웃음).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나라잖아요. 아내 혼자 두고 나가는 게 참 미안했거든요.”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매끈한 외모에 세련된 말투와 매너까지 갖추었다면 그의 이야기의 진실성을 조금은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안정환은 낯도 가리고 말수도 적으며, 외모로 짐작되는 바와는 달리 드문드문 내뱉는 말의 톤이나 레퍼토리는 툭툭 끊어지면서 정겹다. 편지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버리는 남자. 미디어가 겨냥하는 표적이 자신의 일상 안으로 들어오면 그렇게 더더욱 대응이 서툴러진다. 이것 또한 그만의 매력.
“결혼 전에 비하면 말수가 많이 늘긴 했어도 오빠는 천생 운동선수예요. 좋거나 싫거나 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죠. 아주 정직하게 반응을 해요. 그런 면들이 사회생활에서 마이너스로 작용을 하더라도, 그게 안정환이라는 사람인 걸요. 가끔씩, 이 남자 정말 미워할 수 없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공중에 흩어져버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니까요. 토고전에서 역전골을 넣었을 때도 그랬죠. 골을 터트리기까지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거든요. 그날 경기장에서 리원이 안은 채 참 많이 울었어요.”

Sometimes rainy, sometimes sunny

스물둘에 시집온 아내는 시간의 열차를 타고 세 살배기 아이의 엄마가 됐다. “나 믿지? 시집 와.” 근사하게 포장하거나 돌려 말할 줄도 모르고 그저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마음을 날것 그대로 툭 털어놓고 말았지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남자의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보았던 여자는 세상 어떤 멋진 청혼도 부럽지 않았다.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해가 나면 비 오는 날도 있고, 선들선들 바람 부는 날이 있으면 사방을 집어삼킬 듯한 폭풍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는 날도 찾아오는 세상살이의 질서와 법칙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나고 나니, 힘겨운 기억까지도 선물처럼 느껴진다.
“몰디브전 부상으로 5개월쯤 경기에 나가지 못했을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안쓰러워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어느 순간 웃는 얼굴로 남편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퉁퉁 부은 다리를 보면서 소시지 같다고 놀리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어두자 하고, 그러면서 분위기를 바꿨죠. 어느 가정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운동선수의 아내는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해요. 상황을 초연히 받아들일 만큼 담대해야 하구요. 내가 흔들리면 남편에게 고스란히 여파가 미칠 테니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조심스러운 거죠.”
돈과 인기와 명예를 가진 스포츠 스타의 아내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보통 사람은 여행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은 이탈리아며 프랑스, 독일을 돌아다니며 산다니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생활의 본론으로 들어가면 때때로 착잡해진다. 외국 구단에서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여야 하는 현실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실력이야 정정당당하게 겨루면 그만이라고 해도, 그 이외의 것들에 상처를 받을 때면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같은 구단 동료에게조차 마늘 냄새 난다며 배척을 받고 이적 문제로 사기를 당했던 기억들.
“외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애환이 있어요. 인종 차별 같은 것도 있고, 아무래도 체격적인 조건이 유럽 선수들보다 떨어지니까 그로 인한 부대낌도 있죠. 다른 건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만 체력 문제는 아내 입장에서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유럽 가서 처음 한동안은 스테이크만 해준 적도 있는 걸요. 그쪽 선수들 식단대로 똑같이…. 남편이 자기 어렸을 때 밥만 잘 먹고 자랐어도 5cm는 더 컸을 거라고 말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죠. 농담처럼 ‘우리 집에 오지 그랬어’라고 말했는데, 먹을 것만큼은 정말 최고로 해주고 싶어요. 몸에 좋다는 거, 먹고 싶다는 거 있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구해 와야죠(웃음).”
결혼과 동시에 시작한 해외 생활. 남편 하나 믿고, 사랑 하나 믿고 따라나선 길은 때때로 침잠의 시간이기도 했다. 스물둘,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신부가 하나씩 하나씩 세상을 배워가던 날들. 처음에는 시곗바늘이 멈춰 있는 것 같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의 권유대로 공부를 해볼까, 조급증이 일었지만 아이를 가지면서 모든 게 간결해졌다. 큰 욕심 내지 않기로 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남편 내조와 육아에 전념하되 상황이 허락한다면 자기만족을 위한 작은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아이 낳고 더 예뻐지는 산후 다이어트』라는 책을 내고 한식 퓨전 레스토랑을 연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
“신혼 시절에는 외국 생활이 힘들어 서울로 가고 싶단 생각도 많았는데, 요즘은 주어진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즐기려고 해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발견하는 거죠. 하다못해 그들의 속담이라도 하나 배우고 나면 뿌듯해져요.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찾는 법을 알아간다고 해야 하나…. 미술을 해서 그런지 패션 쪽에 관심이 많은데, 그곳 사람들의 트렌드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구요. 확실히 긍정적인 사고가 사람을 밝게 만드는 것 같아요.”

What a lovely baby, ri won

지난 6년 동안 그녀가 진짜 어른이 됐다면 남편은 사람 냄새 은은하게 퍼지는 따뜻한 온기를 품게 됐다. 어둡고 무뚝뚝하고 날이 섰던 모습들이 많이 사라졌다. 처음엔 스타니까 뭔가 특별하고 또 특별한 것을 원하지 않을까, 아내인 그녀도 긴장을 했단다. 살아보니 이렇게 바다 같은 사랑을 안고 사는 사람인 걸…. 혹자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편이 불안하지 않냐고 우스개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글쎄, 그런 일로 속 썩을 일이 있을까.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잖아요. 운동과 집밖에 모르는 남자가 엉뚱한 일로 속 썩일 것 같진 않은데요(웃음). 남편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연습에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고, 자기 관리에 열심인 걸 보면 남편이기 전에 운동선수로서 존경스럽죠. 처절한 노력 없이는 이 자리를 지킬 수가 없으니까요.”
결혼하자고, 꽃 같은 나이의 아내를 꼬드겼던(?) 남편은 요즘도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을 아내를 집 안에 들어앉혔다는 일종의 죄책감이랄까…. 아내가 운동선수인 남편의 애환을 안타까워하듯 남편도 선수의 아내로 살아가야 하는 아내의 고충을 알기에 눈빛이 측은해진다.
“내가 다치면 나보다 더 아파해요. 이번 월드컵 때도 며칠씩 밥을 못 먹어서 살이 쏙 빠졌죠. 여전히 스물두 살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부쩍 성숙해졌어요. 엄마가 되면서 마음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나중에 리원이가 엄마 같은 여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쩌다 사소한 일로 토닥토닥 토라지는 날에도 엔딩 신은 매번 웃음꽃이다. 이상 기류가 감지되면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소강 상태를 유도한다는 부부. 얼마쯤 시간이 지나 남편이 슬쩍 장난을 치며 말을 걸어오면 게임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요즘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 문제로 가끔씩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자녀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는 비슷하다.
“여건만 만들어주고 선택은 스스로 하게 하자는 거예요.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는 거고. 또 물질적인 풍요가 아이의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조율을 해줘야 한다는 말들도 하죠. 아이를 키우려면 부모 둘 중 하나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잖아요. 처음엔 남편이 자기가 악역을 하겠대요.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나한테 미루더라구요. 도저히 못하겠다면서(웃음). 리원이는 클수록 점점 아빠 모습이 나와요. 얼굴도 닮아가고, 세심한 성격도 똑같고….”
리원이는 또래보다 말도 빠르고 발육도 빠르다. 비슷한 월령의 외국 아이들과 비교해도 키가 큰 편이다. 하루 종일 조잘대고 뛰어다니느라 바쁜 리원이. 외국에서 산다는 이유로 모국어에 소홀해질까봐 일부러 수다쟁이 엄마를 자처했다. 수다 떨기 육아법이 적중했는지 26개월째 접어든 리원이의 우리말 실력은 아주 프로페셔널한 수준이다. 식성도 좋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뭐든, 아이들이 싫어하는 양파볶음까지도 얼마나 달게 먹는지 모른다.
“리원이가 아빠를 워낙 좋아해요. 한번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나랑 둘이 있을 땐 척척 올라가더니 아빠가 오니까 바로 약한 척, 안아달라고 잉잉거리더라구요(웃음). 근데 누가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좋니? 물어보면 엉뚱한 말을 하거나 말끝을 흐려요. 자기도 대답하기 곤란한지(웃음)…. 이적 문제가 해결되면 둘째 아이 계획도 세우려고 해요. 남편은 리원이가 딸이니까 내심 아들이길 바라나 봐요. 나한테는 상관없다고 해놓고선 다른 사람이 물으면 아들이라고 대답하는 거 있죠(웃음).”
월드컵이 끝난 후 그녀는 남편의 대표팀 동료들을 초대해 따뜻한 저녁 한 끼 대접했다고 한다. 이운재, 최진철, 김남일, 김상식, 정경호 등 10여 명의 선수들과 간만에 유쾌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월드컵 끝물의 여유도 잠시, 남편은 다시 출타 중이다. 이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먼저 출국했다. 매스컴에서는 안정환의 이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추측성 보도를 하고 있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았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 접어든 남편으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야 할 시기란 걸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녀에게도 지금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차분히 숨을 고를 때. 남편에게 최선의 선택이길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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