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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허허벌판에 23층 원주 한푼 없이 800억 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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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 포트리 인구 3만5000명 청사 330평
인천 옹진군 인구 1만5000명 청사 4420평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시는 인구가 옹진군에 비해 배 이상 많지만 청사 면적은 옹진군청의 13분의 1 수준이다. 포트리시는 한국의 어느 지자체 청사보다 작은 이 건물이 청사 공간으로 부족하지 않다고 밝혔다. [남정호 특파원.중앙포토]

#1 미국 뉴욕주에 맞닿아 있는 뉴저지주의 포트리는 인구 3만5000명의 도시다. 3층 콘크리트 건물인 시청사는 연면적 330평 규모다. 시장실은 6.5평 남짓한 크기로 테이블 앞에 두 개의 의자가 있고 그 뒤로 둥근 테이블이 전부다. 응접세트는 찾아볼 수 없다. 잭 올터 시장은 "집무실은 더 이상 클 필요가 없고 청사를 옮길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2 인천 옹진군은 경북 울릉군 다음으로 적은, 인구 1만5000명의 초미니 지자체다. 하지만 군청사(지상 7층, 연면적 4420평)는 인구가 몇 십 배 되는 서울 강남구(54만 명), 영등포구(40만 명), 고양시(90만 명)와 비슷한 규모다. 지자체 살림이 궁색한데도 큰 청사를 지으려 무리수를 뒀다. 계획단계에서 바닷모래나 섬 일부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려 했다가 주민들이 반대하자 상수도 등 다른 사업에 들어갈 예산을 돌려 썼다. 옹진군 관계자는 "인구가 늘어날 것에 대비하고 기왕 지으려면 잘 짓자는 생각에 호화롭게 보일 수 있는 청사를 세웠으나 앞으로 활용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사가 지자체 사정에 비춰 지나치게 큰지 호화로운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다. 하지만 행정 업무와 공무원 수가 주민 수에 비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인구가 적은 옹진군의 청사는 국내 다른 시.군.구 청사나 미국의 중소도시 청사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 1인당 10평 넘는 청사도=인천 연수구청사 2개 층에는 다른 지방청사에서 볼 수 없는 벤처기업과 문화원이 입주해 있다. 감사원이 지나치게 큰 청사를 지었다고 지적하자 고육지책으로 임대한 것이다. 이 구청의 공무원 1인당 면적은 20평형대 아파트와 맞먹는 17.3평이다. 가장 좁게 쓰는 충남 논산시청(1.76평)의 10배다.

230개 시.군.구는 공무원 1인당 평균 6.77평(지하주차장 등 제외), 16개 광역 시.도는 평균 6.24평을 사용하고 있다. 공무원 1인당 면적이 10평을 넘는 시.군.구 청사만 15곳이다.

광역 청사 중 전남(1인당 14.5평), 광주(18.8평), 부산(11.5평) 등 3곳도 10평을 웃돈다. 민선 이후 등장한 의회 청사들도 의원과 소속 공무원 수에 비해 지나치게 큰 곳이 많다. 의원.공무원 1인당 면적이 20평 넘는 시.군.구 의회청사만 경기 과천시 등 86곳이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큰 청사 짓기에 나선 시기는 민선단체장 취임 이후다. 취재팀이 민선 자치(95년) 이전 청사를 착공한 기초자치단체 187곳과 이후에 착공한 43곳을 비교한 결과 1인당 면적은 6.0평에서 9.85평으로 3.85평(64.2%) 늘었다.

?왜 크게 짓나=민선 이후 호화 청사 논란이 잦은 것은 민선단체장의 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간 자리를 지킬 수 있으므로 근무 환경에 관심이 많게 마련이다. 임명 단체장처럼 중앙정부의 통제를 직접 받지 않으므로 권위 있는 청사를 뜻대로 짓고 싶은 유혹도 느낀다.

지난해 8월 완공된 전남도청사는 23층의 인텔리전트 빌딩이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주위의 산보다 높은 청사가 들어섰다. 일부 도의원이 "부지가 충분하니 4층으로 낮게 짓자"고 제안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두 건물이 우뚝 서야 도의 위상도 선다나요."(문상옥 전 전남도의원)

청사 신축을 밀어붙이는 사람은 대개 공약을 내건 단체장이다. 공무원이 그 총대를 멘다. "충주시가 분수대와 정원을 갖춘 초현대식 청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시청을 지을 땐 이런 선진 시청과 같은 규모로 지어 40만 시민의 자존심을 살리겠습니다."(99년 천안시의회 S국장 답변)

강원도 원주시는 2003년 청사 신축을 시작할 당시 10원 한푼 모아둔 돈이 없는 상태였다. 8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 중 옛 청사 부지의 매각대금을 빼고는 모두 시예산에서 갹출하거나 빚을 냈다.

한준수 당시 시의원은 "빚내 집을 사고 후손에게 갚으라는 무책임한 청사 신축이었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지난해 조사한 24개 청사의 사업비 중 17.6%(2584억원)는 지방채 등으로 조달한 빚이었다.

취재=남정호 뉴욕 특파원
허귀식.천인성 탐사기획부문 기자
임슬기 대학생 인턴기자<제보=deep@joongang.co.kr>
02-751-5677

*** 바로잡습니다
8월 14일자 1면 '50개 시장.군수.구청장실 장관실(50평)보다 넓게 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표에 나온 전남 강진군수실 면적을 53.8평에서 46평으로 바로잡습니다. 강진군은 7월 초 황주홍 신임 군수 취임에 맞춰 군수실.부군수실 일부를 줄이고 여직원 휴게실(11평)과 문서보관실(5.8평)을 신설했다고 밝혔습니다. 취재팀의 조사 시점이 리모델링 이전인 6월이어서 생긴 잘못입니다. 또 15일자 5면 청사 관련 기사 중 표에서 충북 증평군 의회의 의원.공무원 1인당 청사 면적을 49.9평에서 16.6평으로 바로잡습니다. 증평군은 의회 건물 898평 중 599평이 문예회관으로 이용된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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