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들, 해지 한다니까 싸게 해주네"

중앙일보

입력

서울에 사는 이모씨는 최근 LG그룹에 근무하는 한 후배로부터 LG파워콤에 가입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후배는 "현금 12만원을 줄테니 LG파워콤에 가입해달라"고 했다.

후배 부탁도 있고 현금도 준다고 하니, 이씨는 가입회사를 바꾸기로 했다. KT '메가패스'에 가입해있던 이씨는 KT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해지신청을 했다. 그랬더니 상담원이 월 3만4000원 하는 '메가패스 프리미엄' 상품을 2만4000원으로 할인해줄테니 해지하지 말라는게 아닌가.

일산에 사는 김모씨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LG계열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LG파워콤에 가입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존 사용하던 하나로텔레콤 초고속인터넷을 해지하려 했더니 월 2만8000원이던 요금을 1만5000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김모씨는 "요금도 깎아주고 '하나TV'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해서 하나로텔레콤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가입자 뺏기경쟁이 극에 달한 상태다. 후발사업자인 LG파워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파상공세를 펴면서, 선발사업자인 KT(40,150원 50 -0.1%)와 하나로텔레콤(5,030원 0 0.0%)은 안간힘을 다해 가입자 이탈방지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특히 LG파워콤이 LG그룹 계열사를 통해 할당판매를 하면서 가입자당 10만 ̄12만원씩 현금을 지급하는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LG계열사의 한 직원은 "1인당 8명씩 LG파워콤 가입자를 모집하라는 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들 사이에 "해지한다고 말 한마디없이 제값주고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까지 나돈다.

가입자 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이용자들의 피해도 늘고 있다. 일단 해지신청이 접수가 잘 되지 않는다. 직장인 서모씨는 "KT에 해지신청을 한 뒤부터 2 ̄3일동안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라며 "KT가 얼마나 회유전화를 많이 했던지 전화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라고 토로했다.

해지가 지연되면서 사용하지도 않은 요금을 물게 되는 가입자도 생겨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에 해지신청을 한지 일주일 넘게 회유전화를 받고서야 간신히 해지를 할 수 있었다는 김모씨는 "일주일동안 해지를 지연시켜놓고 이제와서 일주일 요금분까지 모두 내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끝간데 없는 경쟁상황으로 치닫다보니, 해당업체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마케팅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요금을 깎아주거나 싼 요금으로 가입자를 모집하면서 가입자당 사용료(ARPU)도 제자리걸음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휴대폰 보조금 경쟁으로 인해 실적이 급감한 이동통신사들의 사례를 보고도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며 "업체들 스스로 시장을 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벌여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누구도 먼저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머니투데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