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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21세기 인문주의 리더는 ? 과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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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원제 The New Humanists:Science at the Edge
존 브록만 엮음, 안인희 옮김, 소소, 484쪽, 2만원

"오늘날에는 1950년대 방식으로 프로이트, 마르크스, 모더니즘 따위를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제공하지 못한다… 과학을 추방한 그들(전통적인 지식인)의 문화는 경험세계와 멀어졌다"

책의 서문은 자못 도전적이다. 과학적 사고의 끝에서 인문학을 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이 책을 골랐다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만나 사이좋게 상부상조하리라는 안일한'환상'은 깨진다. 그러나 깨짐은 깨달음이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지식을 향한 충동은 늘 깨질 각오를 해야한다.

"시지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미술평론가,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에 완전히 무지한 유전자조작식품 반대론자"들을 비웃는 식의 전투적인 화법이 책 곳곳에 난무한다. 이들은 과학의 힘으로 인문학적 금기의 문을 열어 젖힌다. 인종주의나 성차별적 혐의가 짙은 주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22명의 저자 중에는 "여성은 멍청이도 적지만 천재도 적다"라는 여성 다윈주의자(헬레나 크로닌)도 있다.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변이의 폭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며 남녀의 성차(性差)는 단지 사회적 제약 탓이라는 평등주의적 사고는 과학적 사실과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초보적인 것도 알지 못하면서 정책과 사회를 논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논란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공격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성 차별'이 아니라 '성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과 환경을 달리하는 효율적 사회정책이다.

어째서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신대륙의 인디오가 유럽을 정복하지 못하고 백인에게 짓밟혔냐는 물음에 미국 생리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횡으로 펼쳐진 유라시아 대륙은 같은 위도에 속해 기후가 비슷한 지역이 많다. 그래서 한 곳에서 재배에 성공한 식용작물이나 가축을 포함한 문명의 전파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종으로 뻗은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사정이 다르다. 말이나 소.돼지 등 가축화할 수 있는 포유류의 종 자체가 적었고, 위도 차가 심해 식용작물의 전파 속도도 느렸다.

그 결과는 힘의 차이로 나타났고 무엇보다 남미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돼지에서 비롯된 인플루엔자 등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지 못했다. 결국 총칼보다 유럽인들이 들여온 낯선 전염병에 의해 인디오나 흑인이 정복당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새로운 인문주의자들(The New Humanists)'이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문주의자들'은 과학자들이다. 편집자 존 브록만이 서문에서 비난한 마르크스의 추종자들도 한때 '과학'이란 깃발 아래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은 기억해야겠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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