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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붉은 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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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저항하고 판타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

<할아버지의 붉은 뺨>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과연 진짜일까 의심도 되고, 조금 허무맹랑하기도 하다. 하지만 손자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세상 그 어떤 이야기보다 재미있고 진지하게 듣는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자신의 멋진 경험담이나 재미있는 일화가 아니다. 할아버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여유를 잃지 말라고 손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만나는 감동적인 판타지, 할아버지와 손자 이야기를 통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현실에 저항하고 판타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책 마지막에 있는 헌사처럼 현실에서 판타지를 만나려면, 즉 뺨이 붉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독자에게는 삶에 따뜻한 시선과 기적(판타지)이 가능하다고 믿는 여유로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

뺨이 붉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그림책, 동화책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에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온 경험과 손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부모와 자식보다 조부모와 손자의 관계가 더 애틋하고 강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의 손자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을 갖기란 쉽지 않다. 점차 가족 특히 조부모와의 관계가 소홀해지고 있는 요즘,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손자를 만날 수 있는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뺨이 붉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비롭고 흥미진진하다. 벌꿀케이크이나 사탕처럼 달콤하기도 하고, 숲속에서 우연히 주운 날개처럼 환상적이기도 하다. 가끔 전쟁과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끔찍한 순간도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는 낙하산을 타고 무작정 고향집 흔들의자로 뛰어내리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된다.

‘할아버지의 붉은 뺨’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할아버지의 뺨은 점점 붉어지고, 손자의 뺨도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홍조를 띈다. 손자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왠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될, 미지의 시간을 예고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공간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것이다. 때로는 허풍 같고, 때로는 넋두리 같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할아버지와 손자는 교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주의 깊게 책을 본다면,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손자의 뺨이 점점 붉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을 보게 될 수많은 손자?손녀(독자)들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뺨이 붉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세계 최고의 그림책 상, ‘라가치상’ 수상작

매년 봄, 유럽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이 개최된다. 특히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어린이 출판물이 서구 중심의 획일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각 민족의 전통 속에 숨어 있는 독자적인 문화와 이미지를 되살리려는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부대행사 중 하나로 세계 아동 그림 작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를 열어 전세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을 초대, 전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작가와 작품 등 중에서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세계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전 세계 수백여 출판사에서 참가하는 이 도서전에서는 볼로냐 라가치상(Bologna Ragazzi Award)과 볼로냐 뉴미디어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출품작 중 작품성이 우수한 책에 주어지는 볼로냐 라가치상은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할아버지의 붉은 뺨>은 2006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픽션 부문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올해는 전 세계 40개국 2500여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그 중 <할아버지의 붉은 뺨>이 최고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것이다. 또한 2006년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그림책 부문 후보작으로도 선정되어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적인 일러스트와 고급스러운 디자인

그림을 그린 얄료샤 블라우의 수채화는 어두운 톤의 색조가 은은한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이에서 백발의 노인으로 점점 변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있고, 언제나 뺨은 붉다. 흥미진진한 풍경을 지나듯 삶을 살아온 활동적이고 세심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적어 놓은 공책을 펼치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한 소년이 ‘우리 할아버지’라는 작문 숙제를 받아서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공책에 쓴 것 같기도 하다. 공책 느낌의 본문 디자인과 직접 적은 것 같은 손 글씨, 끼적거린 듯한 그림 낙서들이 그런 느낌을 더한다. 낙서 같은 그림은 소년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 떠올렸던 이미지를 재현해 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일러스트와 간결한 글이 잘 어우러져서 언어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은 이야기의 가치 그리고 현실 세계를 뛰어 넘는 상상의 힘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글과 그림의 완벽한 조화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재치와 온기가 느껴지게 한다.

■ 지은이 : 하인츠 야니쉬
196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비엔나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습니다. 1982년부터 오스트리아 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어린이책들을 출간했는데, 12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현재 비엔나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으로는 <일요일의 거인><천사의 날개><정말로 평범한 월요일><행운을 드려요> 등이 있습니다. <붉은 뺨>으로 2006년 볼로냐도서전 픽션부문 라가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그림 : 얄료샤 블라우
197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90년부터 독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함부르크에 있는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각종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파리, 뉴욕, 함부르크, 볼로냐 등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현재 베를린에서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이 있습니다.

■ 번역 : 박민수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독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역서로는 <카라반 이야기><크라바트><꿀벌 마야의 모험><꼬마 물 요정><신의 독약><내 사랑 롭순><책벌레><화가 헤세><다빈치의 암호를 풀어라> 등이 있습니다.

■ 정가 : 9,000원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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