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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또 정치인 사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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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축일마다 단골 쟁점인 사면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8.15 광복절 특사에 대해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2002년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복역하고 의원직을 상실한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포함될 거라는 것이다. 역시 사건에 연루됐던 전직 야당 대표와 거액의 비자금 수수로 복역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사면.감형도 거론되고 있다. 또 열린우리당에서는 사법처리를 받은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는 얘기도 있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사면 소동'을 보면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개혁정권.혁신정권이라고 요란하게 자칭(自稱)하는 현 정권이 과거 정권과 다른 게 무엇인가. 역대 대통령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면권을 남용했다. 자신의 정권과 관련된 비리 인사는 물론 전 정권의 비리 관련자들을 사면해 주기도 했다. 국민의 지탄 속에 감옥에 갔던 이들이 사면이란 이상한 세례를 받으면 다시 선거에 나가거나 공직에 진출하곤 했다.

사면에 관한 한 현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다를 게 없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고 선전했던 대선자금 수사가 끝난 지 1년반도 안 된 지난해 8월 정권은 주요 연루자들을 사면.복권했다. 이 중 한 명은 지금 장관이다. 일종의 '보은(報恩) 사면'이었던 것이다. 다시 1년이 지난 지금 판결문의 잉크가 생생한데도 죄인들은 거의 모두 사면될 판이다.

여당 대변인은 대선자금 연루자에 대해 "개인 비리가 아니라 낡은 관행의 피해자"라고 옹호한다. 청와대는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할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이다. 여권에 따르면 물러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도 낡은 관행의 피해자로 되어 있고 인사권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인사권과 마찬가지로 사면권도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다. 국민 뜻과 상관없이 이를 사용(私用)하라고 한 권한이 아니다. 차라리 "우리 정권은 옛날 정권과 다르다"는 말이나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