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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당한 청와대 졸업생"|1년만에 첫 개방된 백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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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백담사 은둔 1주년을 부처님 진신사리 봉정으로 기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앞으로의 거취가 또 다시 관심거리로 떠 오르고 있다. 그는 백담사를 방문한 정부측 관계자에게『금년은 넘기지 않겠다』고 자신의 문제에 대한 연말 시한을 통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년이라면 앞으로 고작 38일. 지금의 민정당 내부 상황이나 여야 협상의 진척으로 보아 백담사 문제가 이 기간 내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언제 다시 속계로 내려올지, 내려와서는 무엇을 하게 될지 여야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 주목하고 있다.

<사리 봉정식 성황>
○…23일 전씨의 사리 봉정식은 오전 11시부터 약1시간동안 진행됐다.
사리 봉정식은 특별한 불교 예절이나 따로 법회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씨가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백담사에 전달하는 예식이다.
봉정식에는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불교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고 전국 2백여 사찰에서 5천여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수백 대의 버스로 몰려와 성황을 이뤘는데 불교계에서도 학교적으로 지원했고 정부 관계 기관도 길을 포장하는 등 신경을 쓰는 눈치.
그가 이날 봉헌한 석가모니 진신사리는 티베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석가산 스님이 그에게 기증해온 것으로 이것을 지장보살에' 봉정했다.
죽은 이들을 인도하여 안락한 정토나 해탈의 길로 이끌어주는 소원을 세운 지장보살은 전씨의 원불.
원불이란 어떤 목적을 위해 사사로이 모시고 발원 하는 부처를 이르는 것인데 지난번 백일기도를 시작할 때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청동 지장 보살상을 백담사에 모셨다.
○…이날 신자들은 오전 11시쯤까지 백담사 입구에서 검문을 마치고 일부는 걸어서 "절에 올라갔다.
백담사에는 서울 봉은사 합창단· 불광회 합창단·부산 불교 연합회 합창단 등 3개 합창단이 참석해 의식 중 찬불가를 불렀다.
신자들 중에는 이영일·염길정·안영화 전 민정당 의원과 심명보 민정당 의원의 부인도 끼어있었다.
백담사를 지키는 대통령 경호실측은 신자들을 철저히 조회한 뒤 출입시키면서 처음에는 기자들의 접근을 봉쇄했으나 오전 11시30분쯤부터는 기자들의 출입도 허용, 취재하게 했으며 사진기자들에게 촬영기회도 주었다.
전 전 대통령 부부는 법회 시작에 앞서 서의현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 스님들과 함께 순국선열·전몰 장병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했으며 신흥사 주지 혜법 스님과 월정사의 도명 스님 등이 연가에 헌화했다.

<베푸는 마음 배워>
○…전두환 전 대통렁은 오전 10시 백담사 대웅전에서 열린 법회에서 참석한 신자들에게 『날씨도 추운데 이처럼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하고 『뜨거운 물 한컵도 주지 못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말로써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다』고 인사.
전 전 대통령은 『나는 국민과약 속한대로 대통령 임기를 하루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청와대를 걸어나온 사람』이라며 『퇴교생도 낙제생도 아닌 청와대 졸업생』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 나라를 망치고 나라 재산을 다 들어먹었다는 질타를 당하고 있으나, 나는 지혜와 능력이 부족해 시행착오를 한 사실은 있었지만 7년 동안 잘하기도 어렵고 잘못하기도 어려운 사정들을 겪었다』고 술회.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 온 것은 세상이 원망스럽고 보기 싫어져 사람 없는 곳을 찾다보니 갈 길이 두길 뿐이었다』면서 『그 두 군데는 산과 바다였는데 바다로 가자니 태픙이 불어 빠져 죽을 것 같아 산으로 왔다』고 말해 신도들을 웃겼다.
전 전 대통령은 이어 『처음 백담사에 왔을 때 백담사가 TV의「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절간 같이 보여 정이 들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 살다보니 정이 들게됐다』고 말하고 『처음 예불에 참석했을 때는 하도 추워 내장까지 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백일 기도를 하는 동안의 마음 상태에 대해 『처음에는 번뇌·망상이 일어 기도가 잘 안되고 특히 내가 죽어도 몇 사람은 손을 보고 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꽉 차있었으나 점차 남을 원망하면 또 죄를 짓는다는 생각에서 참게 됐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기도한지 70일쯤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속의 불길이 꺼지기 시작했다』 며 『그후부터 마음의 평정을 찾았으며 잠도 편안히 잘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도 했고 이 평생에 더 할 것이 없어 부처님이 되어볼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는데 어느 스님이 「부처가 되겠다는 그것도 탐욕이다」해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마저 버렸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부처님 말씀 한 구절을 소개하겠다』면서 『사람이 복을 구하고자 하면 항상 베풀어라』, 『포시 중 마음을 베푸는 것이 물질 보시보다 더 큰 공덕이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렴은 『나는 이제 절대 성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는 말로 감석한 신자들에게 인사말을 끝냈다. <백담사=임재걸·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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