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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 ‘언론재갈법’ 폭주…지지층에 갇혀 4·7 참패 교훈 망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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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04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의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강행 처리를 입법 성과로 포장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짜·조작 뉴스에 대한 국민 피해 구제법이 어제 통과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야당은 무턱대고 반대할 게 아니다. 평생 야당만 할 생각이냐”고 비난했다.

3개 상임위 동시다발 법안 강행 #‘집토끼’ 잡으려 입법 독주로 회귀 #외부의 적 만들어 내부 결속 전략 #당 일각 “재·보선처럼 부메랑 우려” #야당 “권력형 비리 보도 봉쇄 의도 #헌법재판 등 모든 수단 동원해 대응”

정의당이 “언론중재법이 아니라 ‘언론중죄법’을 만들었다”고 공개 비판하고 친여 성향 시민단체(민언련)가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입장문을 냈는데도 민주당은 나 홀로 자화자찬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서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 건 우리 민주주의를 성숙한 민주주의로 한 단계 높이는 희망 사다리를 놓은 것”이라고 자평했다.

민주당은 지난 19일 하루 동안 문체위를 포함해 환경노동위원회·교육위원회 등 3개 상임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외에도 야당과 선명성 경쟁이 붙은 탄소중립기본법(환노위), 진영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립학교법 개정안(교육위) 등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사립학교 교원 채용 시험을 시·도교육감에 위탁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사학 운영에 있어 최소한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논란이 제기된 법안이다.

민주당이 기습 처리를 시도한 3개 상임위는 모두 오는 25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에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주기로 한 곳들이다. 지난달 23일 국회 상임위원장 재배분에 합의한 뒤 “이제 일하는 국회의 틀이 마련됐다”고 생색을 냈던 윤 원내대표가 당시 지휘자였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원장이 일단 넘어가고 나면 야당의 발목잡기로 처리를 기약하기 힘든 법안들이 쌓이게 될 것”이라며 “시기를 놓치기 전에 꼭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고 가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라고 전했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송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며 ‘협치’와 ‘쇄신’에 방점을 찍는 듯했던 민주당은 이처럼 넉 달여 만에 입법 독주를 통한 ‘힘의 정치’로 또다시 회귀하고 있다. 검수완박·임대차3법 강행 처리로 ‘집토끼’ 공략을 위해 입법 독주에 나섰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당내 경선 국면에서는 캠프뿐 아니라 당 전체가 지지층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송 대표가 중도층 확장 전략에 마이너스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입법을 감행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 여권 핵심 인사는 “당 차원의 선명성 과시는 이른바 ‘명·낙 대전’으로 내부 균열 양상을 보이는 지지층을 원팀 기조로 다시 추스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언론과 야당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 내부 결속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부메랑 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대선주자인 박용진 의원은 “개혁의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년 동안 오매불망했던 공수처도 좋은 의지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우려했다. 박 의원은 “처리된 법안의 취지엔 동의하지만 지금처럼 일정을 잡아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며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밖에선 이 같은 전망이 더욱 뚜렷하게 제기되고 있다. 윤 실장은 “언론중재법은 향후 대출 규제 등 별도의 민생 사안과 결합할 경우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도 “아직 언론중재법 개정 이슈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깊진 않지만 떠들썩한 입법 독주로 갈수록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소통과 설득 없이 쟁점 입법들을 몰아치면서 검수완박 역풍을 재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은 ‘언론재갈법’을 강행 처리한 민주당을 ‘탈레반’에 빗대며 강력히 성토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21대 국회는 민주당과 청와대의 습관성 폭주, 날치기 DNA로 인해 비정상적 상태로 무려 1년 3개월이나 파행 운영되고 있는 후진적 국회”라며 “마치 탈레반처럼 점령군이 돼서 완장 차고 독선과 오만을 벌여온 청와대와 여당은 우리나라의 근본을 통째로 뒤집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법률이 엿장수가 파는 엿처럼 그때그때 마음대로 휘어지고 없어지고 만들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전날 국회 문체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에 대해 “정권 말기에 각종 권력형 비리 보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라며 “북한식 언론 통제, 습관적 입법 독재를 자행하는 민주당은 이름에서 민주를 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국민의힘은 자유가 박탈된 탈레반 국가에서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부스러기 뉴스만 들으며 노예처럼 살기보다는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며 인간답게 사는 길을 택하겠다”며 “헌법재판 등 법적·제도적 대응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만간 출범할 것으로 예상됐던 여·야·정 협의체도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김 원내대표는 “여·야·정 협의체의 근본은 협치와 대화”라며 “기본을 군홧발로 짓밟아놓고 무늬만 화장하겠다는 협의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청와대가 반성하고 민주주의 말살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신뢰를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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