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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탈레반 파지시르 계곡 집결…그 중심엔 '장군의 아들' 있다

중앙일보

입력

1990년대 날짜미상의 사진에서 아프간군 사령관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운데)가 아프간 동북부 산간지역을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990년대 날짜미상의 사진에서 아프간군 사령관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운데)가 아프간 동북부 산간지역을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판지시르 계곡이 반(反)탈레반 세력의 집결지로 떠오르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 새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하지만, 국지적인 충돌이나 내전이 다시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17일 트위터에는 탈레반을 피해 카불을 떠난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이 판지시르 계곡에서 아프간의 전설적인 전쟁 영웅 아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 마수드 주니어와 상봉했다는 글이 퍼지고 있다. 이들은  ‘#판지시르 계곡(#PanjshirValley)’ 해시태그를 단 SNS를 통해 탈레반에 저항하는 북부동맹 세력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살레 부통령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나는 절대 테러리스트 탈레반과 같은 하늘 아래 있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나의 전설이자 지도자인 영웅 마수드 장군의 유산과 영혼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판지시르, 반소·반탈레반 저항 터전

탈레반 병사 한 명이 17일(현지시간) 아프간 칸다하르 지방에서 무장한 채 경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탈레반 병사 한 명이 17일(현지시간) 아프간 칸다하르 지방에서 무장한 채 경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反)탈레반 세력이 이 지역에 집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지역이 아직 탈레반의 손이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여서다.

다리어(아프간 페르시아어)로 ‘다섯마리의 사자’를 뜻하는 판지시르 계곡은 1980년대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아프간 병사들이 게릴라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당시 마수드 장군이 판지시르 계곡 전투를 이끌면서 그는 ‘판지시르의 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프간의 전쟁 영웅인 마수드 장군은 그러나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간 실권을 장악하면서 탈레반에 반기를 들었다. 북부동맹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2001년 9.11 테러가 터지기 이틀 전 탈레반에 의해 암살 당했다.

살레 부통령과 손 잡은 마수드 장군의 아들 마수드 주니어는 프랑스ㆍ미국 등 서방 언론에 편지 보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1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판지시르 계곡에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갈 준비가 돼 있다”며 “탈레반과 싸울 준비가 된 무자헤딘(성전에 참여하는 전사라는 뜻)들과 함께 글을 쓴다”고 밝혔다.

“미국과 아프간의 친구들, 도와달라”

아흐마드 마수드 장군의 아들 마수드 주니어가 올해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찍은 사진. [AFP=연합뉴스]

아흐마드 마수드 장군의 아들 마수드 주니어가 올해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찍은 사진. [AFP=연합뉴스]

마수드 주니어는 이 기고에서 “우리는 이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 시대 때부터 무기를 비축해 왔다”며 “지난 72시간 동안 판지시르 저항군에 합류하라는 나의 호소에 아프간 병사들, 아프간 특수부대 전 대원들이 이곳 언덕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탈레반이 공격을 한다면 우리는 강력히 저항할 것이며, 아프간 자유의 마지막 보루로 판지시르를 지킬 것”이라고도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의 군사력과 군수품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서구의 친구들은 지체없이 우리에게 무기를 공급해달라”고 호소했다. 마수드 주니어는 “탈레반은 아프간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며, 탈레반 치하 아프간은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의 온상이 될 것”이라며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의회, 런던과 파리에 있는 아프간 친구들에게 우리를 위해 나서줄 것을 청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면서다.

앞서 프랑스 매체 ‘르 저널 두 디망쉐’도 마수드 주니어가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를 통해 보낸 편지를 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파리 시민들이 아프간의 독립 전사들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레비는 1998년 판지시르에서 마수드 장군을 만나 북부동맹에게 지지의 의사를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아프간 부통령 “헌법상 내가 임시 대통령”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아프간 헌법상 대통령 유고시 임시 대통령은 제1부통령"이라며 "내가 이 나라의 수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지지와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고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아프간 헌법상 대통령 유고시 임시 대통령은 제1부통령"이라며 "내가 이 나라의 수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지지와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고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 탈레반이 아프간의 주요 군사ㆍ행정시설이 있는 수도 카불을 접수한 상황에서 이들 북부동맹의 투쟁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아프간 안팎 탈레반 반대 세력의 결집 정도에 따라 국지적인 충돌이나 내전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국제사회가 아직까지 탈레반을 공식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아프간 정부의 달러 계좌를 동결시켰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아프간 몫의 IMF 지원금을 차단했다.

살레 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아프간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부재·도주·사임 또는 사망시 제1부통령이 임시 정부의 수반이 된다”며 “나는 현재 아프간 국내에 있으며,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모든 (세계의)지도자들에게 지지와 합의를 확보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한편 지난 15일 탈레반의 카불 진입 직전 대통령궁을 버리고 국외로 탈출했던 가니 대통령은 18일 SNS 영상 메시지를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아프간 국기를 뒤에 둔 채 그는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카불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현재 UAE에 있다"고 밝힌 뒤 "아프간의 정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귀국을 논의하고 있다"고도 했다.

탈레반이 국제사회로부터 합법적인 정권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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