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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아프간 전쟁..미국 정치의 연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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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가니 대통령이 도망친 몇시간 뒤인 일요일 저녁 대통령 집무실을 점령한 탈레반들이 전쟁승리를 선언하고 있다. AP

가니 대통령이 도망친 몇시간 뒤인 일요일 저녁 대통령 집무실을 점령한 탈레반들이 전쟁승리를 선언하고 있다. AP

20년 전쟁, 전격적인 미군철수..한달만에 텔레반 카불 입성 #전쟁의 시작과 끝.. 모두 미국내 여론에 따른 정치적 선택

1.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년만에 끝났습니다. 8월15일 오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72)가 도망치다가 현찰이 너무 많아 활주로에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몇시간후 무장 탈레반 지도자가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 나타나 관리책임자의 안내를 받아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앉았습니다.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습니다.

2. 하룻밤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월요일 카불 공항에서 미국 주도하에 탈출 러시가 이어졌습니다.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끝에 72시간 철수작전을 보장받았습니다.
공항으로 몰려든 현지인파가 비행기 트랩에 매달리는 바람에 미군이 총을 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시민들은 은행에 몰려들어 인출사태가 벌어졌고, 여성들이 온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게 만든 부르카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탈레반 전사들은 과거 정부관계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3.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니까요.
소련이라는 제국이 40년전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했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이란 제국 역시 2001년 공언했던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작전에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5000m 산악동굴에 숨어있는 게릴라와의 싸움이라 정규군 지상전이 불가능합니다. 골짜기마다 다른 부족에 리더십이 제각각이며, 중앙정부는 부패해 쏟아부은 군수물자가 모두 적진으로 새나갑니다.

4. 미국이 이렇게 어려운 전쟁을 시작한 건 2001년 9ㆍ11 테러의 충격 때문입니다.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탈레반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살해하는데 성공했지만..아프간에 ‘항구적 자유’를 심겠다는 대의명분엔 실패했습니다.
탈레반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무관한 이슬람 신정국가를 목표로 합니다. 실제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지배해왔습니다.

5. 긴 전쟁(The Longest War)인데 마무리는 전광석화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9월11일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4월14일. 불과 4개월전입니다. 최대군사기지 바그람에서 미군이 철수한 것이 7월2일입니다. 그리고 1개월여만에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했습니다. 미국이 아직 철수도 다 못한 상황에서..

6. 바이든도 이렇게 전격적일줄 몰랐습니다.
바이든은 7월8일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 탈출처럼) 옥상에서 헬기로 탈출하는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탈레반의 카불 입성은..아무리 빨라도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미국이 20년간 육성한 아프간 정부군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7. 결과적으로 바이든은 바보가 됐습니다.
탈레반은 한달만에 카불에 입성했고, 미국은 대사관 옥상에서 헬기 탈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전쟁이 10년에 끝났다면, 아프간 전쟁은 20년이 걸렸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은 11년 걸렸습니다. 그 바람에 실제로 소련제국은 소멸했습니다. 물론 미국이 그렇지는 않겠지만..20년간 2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 2300명의 목숨을 희생했습니다. 아프간 민간인과 군인 희생은 17만명에 이릅니다.

8.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 잘 보여줍니다.
일방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도, 끝낸 것도 모두 미국입니다. 9ㆍ11 이후 복수심에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두 나라 모두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끝낸 것도 미국내 여론입니다. 지난 4월 철군발표 당시 찬성여론이 73%였습니다. 바이든이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철군을 공약했던 이유입니다.

9. 전쟁은 정치의 연장입니다.
미국은 국내 여론에 따라 값비싼 전쟁을 벌였습니다. 미국이 공들인 아프간 정부는 돈다발을 버리고 도망친 대통령처럼 부패했기에 미군철수와 동시에 몰락했습니다. 탈레반은 ‘개방 다양성을 존중하겠다’고 표방하고 있지만..신정국가를 지향하기에 내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10. 한국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전투병은 아니지만 아프간에 파병했습니다. 그 바람에 단기선교에 나선 샘물교회 일행이 인질로 붙잡혔고, 결국 두 명이 희생됐습니다.
종전과정도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미군은 언제든 자국내 여론에 따라 철수할 수 있습니다. 부패한 정권은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칼럼니스트〉
202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