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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실 어디냐"더니 흉기난동…블로그 글만 남은 미스터리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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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광주고검 흉기 난동 미스터리

광주고검 청사에서 흉기를 휘두른 40대 남성이 지난 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고검 청사에서 흉기를 휘두른 40대 남성이 지난 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오전 9시42분쯤 광주고검 청사 1층. 길이 60㎝의 기다란 흉기를 손에 든 A씨(48)가 현관으로 들어섭니다. 그는 보안요원을 향해 “판사를 만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어 “판사실이 어디냐”고 물은 뒤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흉기를 본 방호원이 지원을 요청하러 간 틈을 타 검찰청사에 난입한 겁니다.

A씨는 8층에 도착하자 긴 흉기를 움켜쥔 채 복도로 향합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스크린도어는 흉기를 이용해 억지로 땄다고 합니다. 그는 차장검사 부속실에서 나오던 수사관 B씨를 발견하자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놀란 B씨는 팔로 흉기를 막았지만, 옆구리를 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결국 그는 검찰직원들에게 제압당했지만, 황당한 태도는 계속됩니다. 경찰로 넘겨진 후 줄곧 묵비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범행동기 등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준 겁니다. 왜 판사실을 물은 뒤 검사가 있는 검찰청에 침입한 것인지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광주고검 청사 현관을 통해 검찰 직원이 출입하고 있다. 전날 광주고검에서는 40대 남성이 흉기 난동을 부려 검찰 직원이 중상을 입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0일 광주고검 청사 현관을 통해 검찰 직원이 출입하고 있다. 전날 광주고검에서는 40대 남성이 흉기 난동을 부려 검찰 직원이 중상을 입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검찰 직원, A씨 흉기에 찔려 중상

A씨가 광주고검 측에 앙심을 품을 일이 없는 것도 수사가 난항을 겪는 대목입니다. 조사 결과 그는 광주고검 관할 지역에서 검·경 수사나 재판을 받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가 사는 곳도 광주고검과 무관한 지역인 데다 피해자 B씨와는 일면식도 없답니다.

상황이 이렇자 광주고검 안팎에선 각종 추측이 쏟아졌습니다. “전두환씨의 광주법정 출석에 앙심을 품고 범행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입니다. A씨가 흉기 난동을 한 날에 광주지법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이 있었음을 염두에 둔 추측입니다. 이에 경찰은 “A씨가 입을 다물고 있어 재판과의 연관성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광주고검 청사에서 흉기를 휘둘러 검찰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힌 40대가 지난 1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경찰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고검 청사에서 흉기를 휘둘러 검찰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힌 40대가 지난 1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경찰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전라도 비하글 게시…사건과 연관성은?

경찰은 A씨가 범행 전 전라도 지역을 비하하는 게시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점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것들도 세상을 망쳐놓았다”는 글입니다. 이 글에는 “전라도 것들이 복수를 위해서 공부하고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어 결국 미친 짓을 했다”라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범행 하루 전에는 “엉뚱한 사람 재판에 불러들이며 복수의 재판을 하는 광주 쓰레기들”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을 향한 헬기 사격을 증언해 온 조비오 신부를 모욕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광주고검 청사에서 흉기난동을 부려 검찰 공무원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붙잡힌 용의자가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고검 청사에서 흉기난동을 부려 검찰 공무원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붙잡힌 용의자가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직업 무엇이냐" 판사 물음에도 묵묵부답

A씨 침묵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때도 계속됩니다. 그는 생년월일과 직업 등을 묻는 판사의 인정신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답니다. 15분 만에 끝난 영장실질심사 직후에는 범행동기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모두 A씨의 입에 달린 분위기입니다. 그가 묵비권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범행동기를 밝히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광주동부경찰서는 지난 11일 특수상해 등 혐의로 A씨를 구속했습니다. 결국 공은 경찰 수사를 거쳐 피습 피해자 측인 검찰로 넘겨지게 된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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