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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알 동동 띄운 ‘막걸리 쉐이크’ 젊은 입맛 사로잡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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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호 18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MZ세대 홀리는 전통주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발표한 ‘2020년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주류 시장 매출액(양조장 출고금액 기준)은 2018년 9조394억원에서 2019년 8조9413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전통주 매출은 456억원(2018)에서 531억원(2019)으로 늘어났다. 탁주(막걸리)의 경우 매출량이 18년 대비 7.3%, 출고 금액은 15.6% 증가했다.

죠리퐁·홍차·마라·모히토 맛 등 #부재료 차별화 제품 속속 등장 #테스형·일곱쌀·얼떨결에·육점팔… #톡톡 튀는 이름 짓기도 취향 저격 #‘올드한 술’ 엄숙주의 벗고 대변신 #올들어 막걸리 찾는 20대 45% 늘어

올해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세븐일레븐의 막걸리 매출을 보면 전년 대비 35.7%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막걸리 소비 비율이 44.9% 상승하면서 ‘막걸리=올드한 술’ 공식은 완전히 깨졌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통주를 취급하는 서울 압구정동 ‘백곰막걸리’ 대표이자 전통주 전문가인 이승훈씨는 최근의 막걸리 트렌드를 이렇게 분석했다. “최근 1~2년 사이 전통주 시장에서 엄숙주의가 사라졌다. 양조장 창업자 연령대도 낮아져서 MZ세대 생산자와 소비자가 SNS를 통해 마시고 싶은 술, 만들고 싶은 술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전통주의 중요 조건 중 하나가 국산 쌀 이용인데, 그 범위가 이제 과일 등 부재료들로까지 확장된 것도 이슈다. 기본은 지키되 개성은 살리겠다는 양조자들의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햄버거 매장, 감성 편의점서도 막걸리 열풍

‘쉐이크쉑’ 불고기버거와 막걸리 쉐이크.

‘쉐이크쉑’ 불고기버거와 막걸리 쉐이크.

지난 7월 ‘쉐이크쉑 버거’는 한국 진출 5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 메뉴로 불고기 버거와 막걸리 쉐이크를 출시했다. 매년 2~3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식에 매력을 느낀 뉴욕 본사 메뉴개발 담당자와 SPC그룹 제품개발팀, 그리고 전통주 양조장 지평주조가 협업한 결과다. SPC그룹 홍보팀은 “함께 개발한 불고기 버거와 궁합이 좋은 데다, 잔칫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막걸리를 마셨던 전통이 브랜드 5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로도 안성맞춤이었다”고 했다. 막걸리 쉐이크에는 휘핑크림 대신 쌀 토핑을 올려준다.

감성편의점 ‘고잉메리’의 갈비 메뉴와 ‘술취한 원숭이’ 막걸리 페어링.

감성편의점 ‘고잉메리’의 갈비 메뉴와 ‘술취한 원숭이’ 막걸리 페어링.

라면부터 스테이크까지, MZ세대 입맛을 저격하고 있는 감성 편의점 ‘고잉메리’ 을지트윈타워점에는 지난 6월부터 막걸리 8종을 파는 부스가 차려졌다. 전통주 홍보 플랫폼 ‘대동여주도’가 추천한 술들이다. 고잉메리 신중환 과장은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라 만약 잘 팔리지 않는다면 고스란히 폐기처리 해야 하는 위험 요소가 컸지만, 판매 시작 후 젊은 층에서 반응이 좋아 앞으로 물량과 종류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국순당은 크라운 제과와 협업해 ‘국순당 쌀 죠리퐁당’을 출시했다. 알코올 도수 4도인 저도주로 국순당 쌀 막걸리에 죠리퐁 원물을 섞어 발효시킨 후 마시기 좋게 걸러 만들었는데 “막걸리에 죠리퐁을 타서 먹는 듯한 달달함”이 특징이다. 대한제분이 한강주조와 같이 만든 ‘표문 막걸리’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오전 9시 판매 개시 몇 분 만에 하루 판매량 200박스(박스 당 4병) 완판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제품명 ‘표문’은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를 뒤집어 표기한 것. 막걸리를 거꾸로 뒤집어 흔드는 모습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독특하고 재밌는 것을 좋아하는 MZ세대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가다. 편의점 CU가 출시한 ‘테스형 막걸리’는 가수 나훈아의 ‘테스형’을 모티브로 막걸리 사발을 든 소크라테스 이미지를 더해 흥미를 끌었다. 연령대별 매출을 분석하니 2030세대 비중이 61.4%로 나타났다.

국순당과 크라운 제과가 협업한 ‘국순당 쌀 죠리퐁당’ 막걸리.

국순당과 크라운 제과가 협업한 ‘국순당 쌀 죠리퐁당’ 막걸리.

합리적인 소비를 통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MZ세대는 현재 모든 유통업계의 주요 타깃이다. 이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전통주 업계도 막걸리 이름·패키지·컨셉트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내놓고 있다.

양조장 주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레이블에 담은 한아양조의 ‘일곱쌀’, 6.8평 양조장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육점팔’, 부담 없는 스파클링 막걸리 ‘얼떨결에’ 등은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네이밍으로 인기가 높다.

‘말이야 막걸리야’ 200ml 캔.

‘말이야 막걸리야’ 200ml 캔.

쌀과 곡성 토란을 이용하는 양조장 시향가의 ‘말이야 막걸리야’는 캠핑·등산용 전통주를 표방하며 200ml 캔을 출시했다. 레이블마다 “산을 타보긴 했는겨” “술 잘 빚는 예쁜 누나” 같은 재밌는 문구가 적혀 있다. ‘관악산생막걸리’는 등산 후 점심을 먹으며 막걸리를 여러 통 비우는 등산객들의 기호를 생각해 1L짜리 병에 담은 게 특징이다.

‘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기업 부럽지 않다’며 캐릭터 굿즈에 열광하는 MZ세대의 취향에 맞게 캐릭터를 활용한 전통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냥이 탁주’ ‘하얀 까마귀’ 등이 대표적이다. 고양시와 오산시가 각각 투자한 이들 막걸리는 도시 이름과 귀여운 동물 캐릭터를 연관시킨 다양한 굿즈를 개발해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감성편의점 ‘고잉메리’의 바질페스토라면과 ‘연희민트’ 막걸리 페어링. [사진 각 브랜드]

감성편의점 ‘고잉메리’의 바질페스토라면과 ‘연희민트’ 막걸리 페어링. [사진 각 브랜드]

부재료의 차별화로 개성을 뽐내는 막걸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모히토’ 맛이 나는 ‘연희민트’, 코코아 파우더를 넣은 ‘오로라’, 머스크멜론 즙을 함유한 ‘멜론30’, 쑥향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수크레(SUCRE)’ 등이다. 서울 연희동에서 전통주 양조장 ‘같이’를 운영하는 최우택(38) 대표는 민트·매화·유자·홍차·팔각 등의 부재료를 넣은 ‘연희’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데, 최근엔 ‘마라 맛’ 막걸리도 개발 중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을 5년간 사사하며 전통주 빚기 내공을 쌓아온 최 대표는 독립 후 ‘세상에 없던’ 맛과 향의 막걸리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는 “옛 문서 속에 존재하는 유명 전통주를 베이스로 젊은 취향의 부재료를 활용한 현대적 감성의 술을 빚고 싶다”며 “모히토, 밀크티, 마라처럼 젊은 층에 익숙한 맛을 내세우면 이들이 부담 없이 전통주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스럽게, 제대로 만든 막걸리

샴페인처럼 탄산을 내뿜는 ‘복순도가’ 막걸리가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1병에 1만원이 넘는 가격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고품격 막걸리에 대한 니즈가 커지면서 가격 저항도 많이 줄었다. 막걸리의 고급화도 빠르게 진행중이다. 오랫동안 전통주 저변 확대에 노력해온 전문가들이 직접 상업용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제대로 만든’ 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고급 막걸리를 목표로 출시된 ‘서울’ 막걸리. [사진 각 브랜드]

고급 막걸리를 목표로 출시된 ‘서울’ 막걸리. [사진 각 브랜드]

올해 1월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이 내놓은 막걸리 ‘서울’이 대표적이다. 2010년부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그 제자들이 차린 양조장도 수십 곳인데,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칫 민망할 수도 있는 상업용 술을 왜 만들었을까. ‘서울’은 류 소장이 직접 만든 누룩 ‘설화곡’을 사용하고, 과정이 까다로운 오양주(한 번의 밑술과 네 번의 덧술 과정이 필요한) 제법으로 완성된다. 힘들고 어려운 술 빚기를 스승이 직접 실천한 셈이다. 유리병에 담고, 뚜껑도 옛날 병 우유처럼 크라운 캡을 사용했다. 마실 때도 와인처럼 디캔터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막걸리를 병째 흔들어 마시는 풍경을 아예 바꾸는 제안인데, 공기와의 접촉을 늘리면 술의 향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국산 청포도와 샤인 머스캣을 부재료로 빚은 막걸리 ‘썸머 딜라이트’.

국산 청포도와 샤인 머스캣을 부재료로 빚은 막걸리 ‘썸머 딜라이트’.

‘대동여주도’의 이지민 대표도 청포도와 샤인머스캣을 부재료로 사용한 막걸리 ‘썸머 딜라이트’를 곧 내놓는다. 이 대표는 “그동안 피자·파스타 등 여러 종류의 외국 음식과 막걸리의 페어링을 연구했지만 사실 맘에 쏙 드는 궁합은 없었다”며 “서양 음식에 친숙한 MZ세대 식생활 취향에 ‘딱’ 맞는 막걸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와인 병에 막걸리를 담고, 로고를 뺀 레이블로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더했다. 덕분에 신경 써서 차린 우아한 식탁에도 잘 어울린다.

월간 디자인의 전은경 디렉터는 “MZ세대에게 먹거리는 이제 하나의 패션”이라며 “어떤 브랜드의 것을 먹는지에 따라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구별된다”고 했다. 패키지 디자인과 브랜딩의 완벽한 밀착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 디렉터는 “성분·맛으로 차별화가 어려운 생수일수록 고급스러운 브랜딩을 위해 패키지 디자인에 더 신경 쓴다”며 “막걸리가 싸구려 술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입하려면 기존과는 다르게 유니크한 패키지 디자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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