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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아카데미 시상식 평정한 윤여정의 “snobbish” 소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9호 22면

콩글리시 인문학

2021년은 윤여정의 해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한국 영화와 영화인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였다.

상류층처럼 보이려는 허영 경멸 뜻 #명품 불티나는 한국 속물 더 많아

나는 일찍이 윤여정과 TV프로그램을 같이 한 적이 있다. 1974년으로 기억한다. MBC는 봄개편 때 ‘스마일 작전’이란 30분 프로를 편성했다. 미국에서 만든 인기프로 Candid Camera 내용에 국내에서 찍은 짧은 필름을 보면서 명사와 대담하는 형식이었다. 스마일 작전의 사회자로 윤여정을 기용한 이유는 지적 이미지에 독특한 메탈릭 보이스가 개성이 있어 이 프로에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Candid Camera는 비행기를 타면 볼 수 있는 Just for Laughs gags의 원조쯤 되는 프로다. 이와 비슷하게 상황을 설정해서 놀란 사람들의 반응을 hidden camera(몰래카메라)로 포착한 CBS의 인기 코미디 프로였다. 여기에 국내에서 찍은 아이템을 첨가해서 초대손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토크쇼가 스마일 작전이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윤여정을 호스티스라고 불러서 화제가 됐다. hostess는 방송용어로 쇼 프로의 진행자를 가리키지만 그때만 해도 술집 여자와 동의어였다.

오늘 윤여정을 소환하는 이유는 그녀의 재치 있는 스피치 때문이다. 윤여정은 지난 4월 12일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척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의미가 있다(specially recognized by British people, known as very snobbish people, and they approve me)”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이를 두고 영화제작자 에드가 라이트는 “윤여정의 snobbish 한마디가 시상식을 휩쓸었다(Yuh-Jung Youn just won the whole award season with that snobbish line)”고 논평했다.

snobbish는 상류층을 흠모하는 보통사람들의 속물적 태도를 경멸하는 표현이다. 스스로 자신을 지적(知的)이라고 생각하고 상류층인 양 행동하는 태도나 가치관이 속물근성(snobbery, snobbism)이다.

원래 snob은 신기료장수, 구두공을 뜻하는 말이었다. 당시 영국 대학생들은 모두 귀족출신이었는데 케임브리지대학이 평민의 자녀들도 입학을 허용하면서 학적부에 신분을 명기할 때 평민의 자녀를 ‘sine nobilitate(고귀함이 없다)’라고 썼다. without nobility란 뜻의 이 말을 s. nob로 줄여 썼는데 나중에는 아예 합쳐서 snob으로 쓰게 되었다. 이렇게 평민이나 하층을 가리키는 snob이 오늘날과 같이 경멸적인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하층민 출신의 졸부(猝富)들이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흉내 내는 일이 크게 유행했기 때문이다.

나는 윤여정의 유머러스한 스피치를 들으면서 과연 영국인들이 그렇게 snobbish한지 의문이 들었다. 신사를 지향하는 영국사람들은 생각보다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절약을 생활화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영국의 졸부들 사이에도 귀족 따라 하기가 한때 유행했으나 일반 국민에게서는 별난 사치와 허영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영국보다 우리 주변에 snobs(속물들)가 훨씬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직도 아빠찬스, 엄마찬스가 판치고 있는 나라에서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등 소위 3대 명품 소비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1년 전에 비해 40% 안팎 값이 폭등했음에도 가게 앞은 장사진이라고 한다. 속이 비어 있을수록 겉치레가 요란한 법이다. 속물사회(snobocracy)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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