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0세, 분수에 포도주 채워 로마 시민들에게 나눠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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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호 22면

와글와글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레오10세(가운데). 왼쪽은 나중에 클레멘스 7세가 되는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 로마의 르네상스를 주도했지만, 면죄부 판매로 종교개혁의 원인을 제공했다.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레오10세(가운데). 왼쪽은 나중에 클레멘스 7세가 되는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 로마의 르네상스를 주도했지만, 면죄부 판매로 종교개혁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메디치 가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 가운데서도 교황 레오 10세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속세에서 그의 이름은 조반니,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끈 로렌초 데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일 마니피코(위대한 사람)’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막강했기에 부친의 영향력으로 불과 13세의 나이에 추기경에 임명됐고 피사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했다.

집무실 테이블마다 포도주 놓고 #예술가들 초청, 간이음악회 열어 #로마 미화 위해 돈 아낌없이 쏟아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 융성 주도 #재정 바닥나자 성직·면죄부 매매 #맥주광 루터의 종교개혁 촉발

1513년 조반니 추기경이 37세의 나이에 교황에 선출된다. 사제로서의 경력은 없었지만, 피렌체 출신 그리고 메디치 가문으로서도 첫 번째 교황이었다. 이후 메디치 가문에서는 클레멘스 7세, 피우스 4세, 레오 11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4명의 교황이 탄생하게 된다.

레오 10세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해인 1475년에 태어났을 뿐 아니라 죽마고우였다. 아버지 로렌초는 능력은 있지만 가난한 예술가와 인문학자를 발탁해 집에서 가족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에게 배우게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아버지 로렌초는 아들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법뿐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이용하는 법도 자주 강조했다. 특히 와인은 이탈리아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아버지는 사업과 정치의 도구로 자주 이용했다.

1513년 4월 11일 레오 10세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로마에서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산피에트로 광장을 빠져나온 행렬이 테베레강을 지나 시내로 향하는 동안 미리 막아 두었던 분수들에서는 붉은 포도주가 일제히 뿜어 올랐다. 교황이 모든 로마시민에게 하사하는 선물로 서민들은 큰 항아리를 들고나와 열심히 포도주를 퍼 담았다. 연회가 펼쳐진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에서도 산해진미와 고급 포도주가 마음껏 제공됐다.

사육제 행사가 열릴 때면 레오 10세는 로마 빈민가 사람들에게 한 가구마다 고기 여섯 덩어리와 포도주 여섯 잔을 배급했다. 6이란 숫자는 메디치 가문의 문장(紋章)인 6개의 공을 상징했다. 포도주는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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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났던 베네치아공화국의 로마 주재 대사 초르치는 1514년 9월 16일 본국에 이렇게 보고하고 있었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젊지만 가장 추남이라는 말을 듣는 레오 10세도 서민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레오 10세는 잘난 척 거드름을 피우는 일이 없었고 보통 사람들과도 소탈하게 대화를 하고 무엇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나눠줄 줄 알았다. 돈, 음식, 포도주 등 권력을 제외한 뭐든지 아끼지 않고 나눠 줬다. 그는 고대 유물 수집에 큰 관심을 가졌다. 바티칸도서관에 방대한 고대의 희귀 필사본이 수집된 것은 그의 덕이다. 그는 그리스 학자들을 로마에 초대하고 위기에 놓인 그리스 대학들을 후원했다.

식탐이 많았지만 동시에 입담도 좋아서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예술가, 음악가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가끔 교황청 개인 집무실에서는 테이블마다 한 잔의 포도주가 놓여 있는 가운데 간이음악회가 열리곤 했다. 참석자들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유대인 음악가들이 현악기 류트를 손에 든 교황을 둘러싸고 있었다.

레오 10세의 전임자는 율리우스 2세다. 그의 재위 시절에도 브라만테가 베드로성당의 신축공사 책임자가 되고 미켈란젤로가 여러 가지 주요한 예술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메디치 가문 출신인 레오 10세가 교황이 되면서 피렌체 출신의 유명 예술가들은 대거 로마로 이주하게 된다. 로마는 이제 세계의 문화 수도가 된다. 151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로마에 왔지만, 레오 10세가 가장 아낀 예술가는 라파엘로였다. 브라만테가 사망하자 베드로성당 신축공사 책임자 자리도 라파엘로에게 넘긴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어릴 때 친구였지만 그의 괴팍함을 잘 알기에 그에게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소유 산로렌초 성당의 파사드를 완성해 줄 것을 의뢰하며 멀리 보냈다.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위해 온 프랑스의 젊은 왕 프랑수아 1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소개해 준 사람도 레오 10세다.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가 당나귀에 실려 알프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우리가 지금 로마에서 만나는 화려한 건물들은 콜로세움 등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대 로마의 것이 아니라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두 교황 재임 시절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레오 10세는 르네상스 미술의 최대 후원자였으며, 로마의 재건과 미화를 위해 물 쓰듯 돈을 썼다. 전임자의 저축과 본인의 돈 그리고 후임자의 돈까지 싹싹 긁어서 화려한 로마를 장식하고 본인의 취미생활을 하는 데 아낌없이 썼다.

바티칸 재정은 바닥이 보였고 조직적으로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교회의 부패에 반발하는 목소리 높아졌는데, 특히 알프스 북쪽에 있던 마르틴 루터가 대표적이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루터는 알프스 이북의 신교와 맥주 문화를 대변하고, 레오 10세는 알프스 이남의 구교와 와인 문화를 대변한다. 루터는 누구보다 맥주를 사랑해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 6~7시간 잠을 푹 잘 수 있고, 그 시간 동안 죄짓지 않으니 천국에 갈 수 있으며, 깨어 있는 나머지 시간에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인 카타리나는 한때 수녀원에서 맥주를 만드는 양조사로 일했던 수녀였지만 루터의 종교개혁 주장에 매혹되어 수녀원에서 나와 그와 결혼했다.

열정적인 사냥 취미가 있었던 교황 레오 10세는 사냥에서 비를 맞고 돌아와 44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사망한다. 급성 폐렴이 원인인 듯하다. 누구보다 빛과 그림자가 강했던 인생이었다. 그의 사망과 함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사실상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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