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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배우 예수정을 만든 힘 "나는 NO할 권리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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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 배우 예수정

권혁재의 사람사진 / 배우 예수정

 배우 예수정,
그는 천만 관객 영화 세 편에 출연한 명품 연기자다.
그 세 편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신과 함께’ ‘도둑들’ ‘부산행’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그는 연극·드라마에서 종횡무진 뛰고 있다.
일흔이 다 돼 가는 나이에도
도드라진 활약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인터뷰 자리에서
그가 밝힌 활약의 이유는 이러하다.
“저 때문에 천만이 됐다는 마음보다
실수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만 있죠.
시사회도 잘 못 가요.
부끄러워서 몰래 숨어서 혼자 보는 편입니다.
사실 시대 덕 본 거 같아요.
이 시대 작품은 고맙게도
흔히 생각해왔던 어머니, 할머니, 시어머니역보다
다양한 역을 원하니까요.
사회가 개방돼 있으니
나이와 인물에 상관없이 캐릭터가 많아진 거죠.
그 바람에 제가 여러모로 이득 보는 거죠.”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가 예수정씨 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만큼 그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배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가 예수정씨 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만큼 그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배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대 덕으로 이유를 돌렸지만,
그의 배우 DNA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된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왕할머니로 유명한
정애란씨가 그의 어머니다.

“갓난아기 때는
엄마 젖 먹으러 분장실을 드나들었고,
다섯 살 무렵부터는
객석에 앉아 엄마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죠.”

그런데 어머니는 “한국에서 배우 하지 마라”며
그가 연기하는 것을 반대했다.
“갑은 을에게 권리를 보장해주겠다면서도
실제로 정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죠.
먼저 배우로 사신 어머니의 반대는
그때도 이해됐고 지금도 이해됩니다.
배우가 서러운 게 수동적인 겁니다.
간택 받아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하고 싶은 작품을 다하진 못해도,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겁니다.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을 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며
배우를 관두지 않았기에,
배우로서 이런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
행운을 누리는 거죠.”

 소탈하면서도 겁내지 않고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를 닮기 싫어도 저절로 그 자신이 닮아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탈하면서도 겁내지 않고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를 닮기 싫어도 저절로 그 자신이 닮아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인터뷰 후
그는 영화 ‘69세’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을 받았다.
주연을 받쳐주고 빛내주는 조연이 아닌
주연배우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