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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김민의 한 줄로 쓴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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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김민 시인

권혁재의 사람사진 /김민 시인

 “혹시 김민 시인 아시나요?
한 줄 시로 된 그의 첫 시집을 보면
그 한 줄 시에 놀랄 겁니다.
김수영 시인의 조카이며,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어요.”

누군가가 김민 시인을 이리 소개하며
시집까지 두 권 빌려줬다.

2007년 나온 첫 시집은『길에서 만난 나무늘보』였다.
시 ‘흑백사진’은
‘그 속에선 내 오랜 철없음도 바래기를’이 다였다.
모두가 제목 한 줄,
시 한 줄인데 절묘했다.

올해 발행된 세 번째 시집은
『신神 주머니에서 꺼낸 꽃말사전』이었다.
이 또한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거의 한 줄 시였다.
‘밤사이 쌓이는 달빛 여섯 광주리/
아침에 보니 벌써 누가 집어갔네’처럼
제목이 시고, 시가 제목 같았다.

그가 머무는 경산으로 내쳐 달려
한 줄 시에 얽힌 이야기를 청했다.

흰 셔츠 차림으로 찍은 큰아버지 김수영 시인의 대표 사진처럼 김민 시인 자신도 마침 흰 옷차림이라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흰 셔츠 차림으로 찍은 큰아버지 김수영 시인의 대표 사진처럼 김민 시인 자신도 마침 흰 옷차림이라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릴 땐 친구와 어울리기보다
큰아버지 무덤가에서 홀로 놀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다른 무덤보다
‘풀’이란 김수영 시비가 있으니 좋았죠.
그렇다고 시인이 되고픈 꿈은 전혀 없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제가 오른손을 거의 못 쓰니
미대에 못 가고 국어교육과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한 선배가
김수영 시인 조카가 시 한 줄도 못 쓰냐고
핀잔 줬습니다.
그 바람에 시 동아리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죠.
그런데 하도 등단이 안 되니
최승호 시인에게 1999년부터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최 시인이
‘네 머릿속에 너무 많이 들어있는 것을 덜어내라’고 했습니다.
한 줄 시에 대한 느낌이 그제야 확 왔습니다.
그러면서 2001년에야 등단했습니다.”

'자벌레/어떤 보이지 않는 눈에 우리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의 등단 시이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다. 수정에 수정을 하느라 한 편에 몇 년씩 걸리기 마련이지만 이 시만큼은 단박에 썼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벌레/어떤 보이지 않는 눈에 우리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의 등단 시이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다. 수정에 수정을 하느라 한 편에 몇 년씩 걸리기 마련이지만 이 시만큼은 단박에 썼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맘대로 못 쓰는 근육,
근시·원시·난시·사시인 눈이라
나무늘보처럼 느리지만,
그는 숱한 날들 한 줄씩, 한 자씩 쳐내고 덜어내어
한 줄만 시로 남겼다.

이렇게 지은 시로
그는 2019년 구상솟대문학상을 수상하며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김민 시인은 현재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소월열림학교 시인마을 초대촌장이다. 시로 어린이를 위로해주려 촌장을 맡았으나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들을 만날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민 시인은 현재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소월열림학교 시인마을 초대촌장이다. 시로 어린이를 위로해주려 촌장을 맡았으나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들을 만날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는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이며
그의 등단 20주년이다.

선글라스인 줄 알았으나 색이 변하는 안경이었다. 근시 ·원시 ·난시 ·사시인 눈이라 눈부심이 심하여 쓰는 안경인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선글라스인 줄 알았으나 색이 변하는 안경이었다. 근시 ·원시 ·난시 ·사시인 눈이라 눈부심이 심하여 쓰는 안경인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러니 새 시집은 큰아버지에 대한 헌정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