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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닮거나 다르거나…우유와 두유, 두부와 치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108)  

우유와 두유가 둘 다 유백색인 것은 녹아 있는 성분의 물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단백질과 지방이 완전히 녹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분산되어 있는 구성이다. [사진 pxhere]

우유와 두유가 둘 다 유백색인 것은 녹아 있는 성분의 물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단백질과 지방이 완전히 녹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분산되어 있는 구성이다. [사진 pxhere]

보통 우유(牛乳, milk)와 치즈는 서양 음식, 두유(豆乳, soy milk)와 두부는 동양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전자는 유럽에서, 후자는 한·중·일 3국 중 하나에서 만들어져 그런가 싶다. 전혀 다른 음식이지만 이들 간에는 유사한 점이 너무 많다. 얼핏 보기에는 구별이 안 될 정도. 제조과정까지 닮아있다.

우선 두유 만드는 법. 콩을 물에 불려 조직을 연화시킨 후 맷돌에 갈아 단백질을 녹여내고, 끓인 후 걸러 가용 부분만 모은 것이 두유다. 찌꺼기가 비지이고. 비지에도 상당한 영양성분이 남아있어 청국장처럼 고초균으로 띄워(발효) 맛을 좋게 해 찌개 등으로 끓여 먹는다. 식이섬유의 보고라는 상찬이다.

콩을 물에 불려 조직을 연화시킨 후 맷돌에 갈아 단백질을 녹여내고, 끓인 후 걸러 가용 부분만 모은 것이 두유다. [사진 pixabay]

콩을 물에 불려 조직을 연화시킨 후 맷돌에 갈아 단백질을 녹여내고, 끓인 후 걸러 가용 부분만 모은 것이 두유다. [사진 pixabay]

두유는 색깔이 우유와 매우 유사하다. 이런 이유로 ‘∼유(乳)’라는 이름이 붙었지 싶다. 둘 다 유백색인 것은 녹아 있는 성분의 물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실은 단백질과 지방이 완전히 녹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분산되어 있다고 해야 옳다. 이런 상태를 학술용어로 ‘에멀션(emulsion)’이라 한다. 이런 에멀션은 불안정해 침전되기 쉽다. 외부의 충격 때문에 잘 가라앉는다는 뜻. 이런 분산된 단백질을 응고시켜 응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쓴다. 침전에 두유는 산과 간수, 드물게는 효소를, 우유에도 역시 산과 효소를 이용한다.

우유와 두유의 단백질을 각기 응고시켜 따로 모은 것이 각각 치즈이고 두부다. 물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겉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우유와 두유의 단백질을 각기 응고시켜 따로 모은 것이 각각 치즈이고 두부다. 물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겉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이렇게 우유와 두유의 단백질을 각기 응고시켜 따로 모은 것이 치즈이고 두부다. 물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겉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이 두 단백질은 질이 비교적 좋다. 즉 필수아미노산의 함량이 높다는 것. 굳이 따지자면 치즈 쪽이 더 좋다. 걸러서 나오는 액은 치즈의 경우 유청(whey), 두부는 순물이라 한다. 여기에도 영양성분이 많이 남아 있어 따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이 두 단백질을 산으로 침전시키는 원리이다. 우유나 두유에 산을 첨가하면 단백질이 응고된다. pH를 5 근방으로 내려주면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를 ‘등전점(等電點) 침전’이라 한다. 이런 방법으로도 치즈와 두부를 만들기도 한다. 응고되는 pH도 서로 비슷하다. 한때 우유로 두부를 만든다고 신기해했다. 오래전 TV 깜짝쇼에서 어떤 별난 이가 우유에 식초를 넣어 두부같이 굳히는 과정을 보여줘서다. 이상할 것도 없다. 이는 우유 단백질을 등전점 침전시켜 두부처럼 만든 치즈이기 때문이다. 우유 단백질이 산으로 응고되는 현상은 우리가 일상으로 경험한다. 신맛 나는 과일과 우유를 같이 갈아주면 굳어버리는 것, 애가 우유 먹고 토할 때 엉켜 나오는 것, 우유를 유산균으로 발효하면 걸쭉하게 호상으로 되는 것 등, 이게 바로 과일의 유기산, 위 속 염산, 유산균의 유산에 의해 단백질이 등전점 침전한 것이다.

다음 효소에 의해 응고되는 원리이다. 특정 효소가 에멀션 형태로 있는 단백질의 한 부분을 잘라버리면 용해도가 감소하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때 우유를 응고시키는 효소는 렌넷(rennet)이라는 것으로 송아지의 제4위에서 얻는다. 두유를 굳힐 때는 송아지가 아니라 미생물 효소를 쓴다. 각각을 응유효소(milk clotting enzyme)와 두유응고효소(soy milk clotting enzyme)로 부른다. 실제 두부 만들 때는 효소를 잘 쓰지 않지만, 치즈에는 예외 없이 효소를 쓴다. 두 효소의 작용원리도 거의 같다.

그런데 응유효소는 왜 하필 송아지의 제4위에서 얻을까?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 효소는 송아지에게만 있어서다. 송아지가 성우가 되면 렌넷이 펩신으로 대체되고 응유 기능이 없어지는 게 신기하다. 송아지를 희생시켜 효소를 얻기 때문에 구매와 비용이 만만찮다. 최근에는 송아지유전자를 미생물에 도입, GMO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두부 제조에는 대부분 간수를 이용한다. 효소로도 만들 수 있긴 하나 입수가 어렵고 복잡해 거의 쓰지 않는다. 간수의 성분은 바닷물에 포함된 염화칼슘, 염화마그네슘, 황산마그네슘 등이다. 콩 단백질이 이들 염과 결합하여 응고되는 성질을 이용한 것. 치즈에 제조에 이런 염류를 이용하는 방법은 없다. 간수가 몸에 좋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 생각도 그렇지만 적은 양은 인체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공장 규모에는 이런 간수가 아니라 화학약품을 쓴다. 화학이라면 소비자가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똑같은 성분이다. 오히려 더 깨끗하고 훨씬 위생적이며 간편하기까지 하다. 세상에는 화학물질이 아닌 게 없다. 이상의 방법으로 만든 치즈와 두부는 그냥 혹은 여러 형태로 가공해 먹는다.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두부의 경우 우리에겐 모두부, 순두부, 유부 정도지만 중국이나 일본에는 관련 제품이 수십 종류에 달한다. 치즈 종류는 수백에 이른다.

세간에는 치즈와 두부를 좋은 음식으로 친다. 특히 두부에 대한 예찬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실제 두부는 콩에 들어있는 단백질만을 농축한 것이라 단맛과 응용성, 기호의 문제는 있겠지만 오히려 온 콩을 먹는 것보다 영양학적으로는 더 좋다 볼 수 없다.

항간에는 두부에 대한 가짜뉴스가 사실처럼 통용된다. 혈관건강, 항암, 심장병, 치매 예방, 다이어트에 좋고, 두부를 말리거나 얼려 먹으면 단백질 함량이 몇 배나 증가한다는 등, 두부에 이런 효과가 있다면 이는 식품이 아니라 진시황이 구하던 만병통치 식품이다. 또, 건조하면 단백질 함량이 늘어난다는 건 건조하면 영양성분이 늘어난다는 소리로 들린다.

두부에 대한 예찬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실제 두부는 콩에 들어있는 단백질만을 농축한 것이라 단맛과 응용성, 기호의 문제는 있겠지만 오히려 온 콩을 먹는 것보다 영양학적으로는 더 좋다 볼 수 없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두부에 대한 예찬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실제 두부는 콩에 들어있는 단백질만을 농축한 것이라 단맛과 응용성, 기호의 문제는 있겠지만 오히려 온 콩을 먹는 것보다 영양학적으로는 더 좋다 볼 수 없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식품 속 영양성분의 함량은 건조 중량당 비교하는 게 상식이다. 한쪽은 물을 머금고 있고 한쪽은 물기를 말려 중량이 줄었는데 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말이 되나 싶다. 두부 한모를 건조하면 밤톨만큼 된다. 같은 한 모를 그냥 먹거나 말려 먹거나 영양성분의 절대량은 변하지 않는데도 그런다는 건가. 모든 함수(含水) 식품이 다 그렇지 않나?

이런 걸 TV에 나와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마치 없던 영양소가 건조하면 새로 생기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는 것. 이를 듣고 그렇게 믿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 시중에는 식품에 대한 이런 가짜뉴스가 예사롭지 않다. 조만간 하나하나 짚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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