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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딸려왔다, 무슨 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106)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딸려왔다’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내용물에 비해 봉지가 질소가스로 과도하게 부풀어 있어 이를 비아냥대며 하는 말이다. 또 값을 못 올리니까 양을 줄이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그 내막을 알아본다.

실제는 봉지가 터질 듯 그렇게 질소로 빵빵하게 채우는 것은 내용물의 변질을 막기 위함이다. 즉, 공기(산소)를 빼내고 질소로 치환해 산소에 의한 산화를 막고, 동시에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이른바 공기를 배제하는 진공포장의 일환이라는 것. 봉지가 가스로 부풀어 있는데 진공이라 하면 의아할 테지만 공기가 없으니 이것도 진공포장으로 분류한다. 진공포장이란 ‘어떤 용기에 들어있는 내용물에서 산소(공기)를 배제하여 보존성을 좋게 하는 작업’이라 정의한다. 그럼 진공포장의 좋은 점을 뭘까.

진열대 위의 각종 과자들. 진공포장은 내용물의 변질을 막고 보존성을 좋게 하기 위해 흔하게 쓰이는 과자 포장법이다. [사진 flickr]

진열대 위의 각종 과자들. 진공포장은 내용물의 변질을 막고 보존성을 좋게 하기 위해 흔하게 쓰이는 과자 포장법이다. [사진 flickr]

산소는 식품의 산화변질에 직접 관여한다. 동시에 부패의 원인이 되는 호기성 미생물의 생육에도 필수다. 이런 이유로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공기(산소)를 배제하는 것. 이에는 질소로 공기를 치환하는 방법, 산화방지제의 첨가, 산소를 흡수하는 재질의 주입, 탄산가스로로 채우는 법, 진공으로 해주는 방법 등이 있다. 이 중에 공기를 빼내는 진공법과 가스 등으로 치환하는 방법이 가장 많이 쓰인다.

참고로 질소는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다. 동시에 가스 중 가장 안전하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약 80%가 질소 약 20%가 산소이며, 들이마신 질소는 체내로 흡수되지 않고 대기 중으로 다시 되돌아 나온다. 당연히 공기 중에는 1% 전후 탄산가스 등 다른 가스가 섞여 있다.

우선 질소로 공기를 치환하는 이유. 공기 속 산소가 영양성분에 작용해 유해물질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기름기가 많은 음식에 이런 반응이 잘 일어난다. 심한 경우 과산화 혹은 휘발성 물질이 나와 고약한 냄새와 맛을 동반한다. 이런 반응을 이른바 산패라 하며, 생성물 중에는 만병의 근원으로 치는 활성산소도 포함한다. 튀긴 음식에 쩐 내를 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자류 등 기름기 많은 인스턴트식품에 자주 질소를 채우게 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의 산패는 우리가 몸에 좋다는(?)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은 식물성기름에 잘 일어난다. 실례로, 오메가 지방산이 많다는 들기름, 올리브유 등이 이에 취약하다. 보관 온도가 높으면 산화가 더 빨라진다.

동시에 산소를 배제하면 식품의 갈변현상도 막을 수 있다. 이유는 색깔 변화에 관여하는 효소(polyphenol oxidase)가 산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감자나 밤, 과일 등 껍질을 깎아두면 금세 색깔이 변하는 데 이를 (소금)물 등에 담가두면 산소의 접촉을 막아 갈변을 방지할 수 있다.

봉지가 터질 듯 질소로 빵빵하게 채우는 것은 내용물의 변질을 막기 위함이다. 공기를 배제하는 진공포장의 일환이다. [사진 이태호]

봉지가 터질 듯 질소로 빵빵하게 채우는 것은 내용물의 변질을 막기 위함이다. 공기를 배제하는 진공포장의 일환이다. [사진 이태호]

다음으로 공기를 빼내는 까닭은 산화 방지의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하는 것이다. 미생물은 산소의 요구성에 따라 호기성, 통성혐기성, 편성혐기성균으로 나눈다. 호기성은 산소가 있어야만 자랄 수 있는 것, 통성은 산소가 있으나 없으나 자라는 것, 혐기성은 산소가 있으면 생육이 불가능한 종류를 말한다. 그러나 부패에는 대부분 호기성균이 관여하기 때문에 산소를 차단하면 저장성이 크게 좋아진다.

이때도 물론 미생물의 생육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변질이 진행되긴 한다. 따라서 진공포장은 우수한 식품의 저장방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 진공 정도에 따라 미생물의 생육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심하고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식품의 종류에 따라 진공포장 전후 고온에서 살균처리 해주면 보존성은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순대, 족발 등 익힌 음식에 자주 적용되는 방법이다.

진공포장이 산소의 농도를 낮게 해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하는 방법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이를 대신하는 방법도 있다. 질소치환이나 진공법이 아니라 포장 속 산소를 흡수 제거하는 화학시약을 첨가하는 경우와 질소 대신 탄산가스를 채우는 방법 등이 있다.

진공포장 시 포장 용기의 유해성 문제가 가끔 거론된다. 포장재로부터 나쁜 물질이 용출될 우려가 있어서다. 재질에 의하지만 환경호르몬이 용출된다는 것. 과거 비스페놀이 자주 거론됐다. 이에 대해서는 보건당국이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 너무 과민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주의는 필요로 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지가 아니라서 문제라는 거, 먹으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게 딜레마다.

앞으로는 과자봉지가 부풀어 있다고 너무 탓하지 말자. 크기에 비해 내용물이 심하게 적을 경우는 몰라도. 이 방법이 아주 과학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염려한 고마운 기술이라는 거,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다행인 것은 과거와는 달리 우리의 식품 관련 규제는 세계 으뜸이다. 현장의 원성이 높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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