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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신문지·비닐봉지까지 쓴다…레바논의 생리대 비극

중앙일보

입력

국제 NGO 단체 회원들이 레바논 여성들에게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대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위생 키트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NGO 단체 회원들이 레바논 여성들에게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대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위생 키트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걸레, 오래된 신문지, 비닐 봉지, 잘라낸 기저귀….  

경제 위기로 극심한 빈곤에 내몰린 레바논 여성들이 생리대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경제난에 통화가치 90% 평가절하 #수입품인 여성생리대 가격 천정부지 #인권단체 "빈곤 지원, 생리대 포함해야"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지난 3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여성용 생리대와 탐폰 등의 가격이 1년 만에 5배, 2019년 대비 10배 이상 치솟았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의 인권단체 피메일(Fe-Male)은 "결국 레바논 여성에게 생리대와 음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내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빠진 레바논

중동국가임에도 석유가 나지 않는 레바논은 관광업·금융업 등에 의존해 국가경제를 꾸려왔다. 그러다 2019년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발발하면서 외화 송금액이 감소하고 수십억달러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2011년 이후 15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것도 것도 레바논 경제 부담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지난해 베이루트 폭발 참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악재가 겹쳤다. 레바논 경제는 지난해 20% 넘게 위축됐고, 인구의 55% 이상이 빈곤선 밑으로 떨어졌다.

레바논 통화가치, 1년간 90% 평가절하

생리대 가격 급등은 레바논 통화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레바논 파운드의 가치는 지난 1년동안 90% 넘게 평가절하됐다. 공식적으로 1달러에 1500레바논 파운드로 정해졌지만, 암시장에서는 달러당 2만 레바논 파운드에 거래될 정도다.

이에 따라 생리대와 같은 수입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금융위기 전에는 3000레바논 파운드(약 2300원)에 거래되던 여성 생리대 한 팩 가격이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3만5000레바논 파운드(약 2만6000원)까지 올랐다.

인디펜던트는 정부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레바논 정부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1달러당 3900레바논 파운드에 수입할 수 있는 '필수 품목' 목록을 작성하면서 남성용 면도기는 포함시키고 여성용 생리대를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매체는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지원할 품목으로 음식과 깨끗한 물, 아기 우유 등은 쉽게 떠올리지만 여성 생리대를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레바논 시장의 모습. 2019년 금융 위기 이후 레바논 통화 가치가 90% 이상 평가절하되면서 극심한 빈곤에 내몰리고 있다. 연합뉴스

레바논 시장의 모습. 2019년 금융 위기 이후 레바논 통화 가치가 90% 이상 평가절하되면서 극심한 빈곤에 내몰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단체 "빈곤 지원에 여성 생리용품 포함시켜야" 

레바논 여성들은 생리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선단체인 윙우먼(Wing Woman)은 생리컵 사용 방법,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대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네 아이의 엄마인 파디야(38)는 "많은 사람들이 생리대를 마련할 여유가 없어 비위생적이고 오래된 천을 사용하고 있다"며 "나는 물론이고 16살짜리 딸을 위해 지금껏 생리대를 구하러 싸워왔다. 이제 바느질로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레바논 여성의 실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유럽 영화 제작사의 에벨리나 르웰린은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떨어졌고, 특히 여성들은 전보다 더 침묵과 인내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생리대는 모든 여성이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라는 인식을 갖고 빈곤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선진국조차 생리대를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취급한다. 대다수 EU 국가에서는 생리대를 사치품으로 구분해 부가가치 세율을 5% 이하로 낮추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애리조나주는 감초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지만 탐폰에는 과세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놀이동산 놀이 기구는 면세인 반면 탐폰은 과세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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