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400만명 잘렸다, 인도 가사노동자들 울린 이것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05:00

지난달 인도 뉴델리에서 여성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인도 뉴델리에서 여성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가전업계 초호황이 인도에 '400만 실직자'를 만들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에 불안한 인도 부유층이 가사 도우미를 내보내고 빈 자리를 '가전 이모님'으로 채우고 있어서다.

LG전자 식세기 매출, 인도서 400~500%↑
빈민가 거주 가사노동자, '감염원' 취급
부유층, 가전으로 빈민층 노동력 대체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한국 기업인 LG전자의 2020~2021년 식기세척기 매출이 인도 시장에서 전년 대비 400~500% 증가했다. 밀려드는 주문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물건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진공 청소기 판매량은 3배 이상 급증했다. 인도 뉴델리의 다이슨 매장 판매원은 "월 매출이 4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2019년까지 월 15개 남짓 팔리던 로봇 청소기 판매량도 55% 이상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기세척기·로봇청소기에 자리 뺏긴 가사도우미

그동안 인도의 부유층은 주방 인테리어나 값비싼 가전 설치에 소홀한 편이었다. 주방은 가족의 공간이 아니고, 가사 도우미가 일하는 곳이라 굳이 편리하고 보기 좋게 꾸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인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비위생적인 빈민가에 거주하며 자신의 집으로 출퇴근하는 가사 도우미를 되돌려 보내는 부유층이 늘었다. 가디언은 "인도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노동자는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코로나 이후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가사 도우미로 일하다 일자리를 잃은 칸타 데비(48)는 "코로나 발생 직후, 그동안 매일 출근하던 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만 나오라고 했다"며 "집에 갈 때마다 세탁기,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식기세척기 등 가전이 늘어나는 게 보였고, 결국 그들은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며 나를 내보냈다"고 말했다. 데비의 친구인 캄루니샤(52)도 같은 이유로 해고됐다. 그는 "(일하던) 부엌에 꽉 들어찬 가전을 보니, 나 없이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나는 직업을 잃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들의 한달 월급은 3000루피(약 4만6000원) 정도다.

문제는 코로나가 사라져도 가사 도우미가 다시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부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빈민가에 사는 가사 도우미들을 자신의 집에 들여놓기 싫어하게 됐고, 이들의 노동력을 가전으로 효율적으로 대체하는 법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LG전자는 2018년 인도 델리 최대 쇼핑센터인 엠비언스몰에 55인치 올레드 사이니지 63장을 활용해 가로 5m, 높이 8m 크기의 사이니지를 설치했다. 인도 델리 최대 쇼핑센터인 엠비언스몰 바산트군즈에서 쇼핑객들이 LG 올레드 사이니지 조형물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는 2018년 인도 델리 최대 쇼핑센터인 엠비언스몰에 55인치 올레드 사이니지 63장을 활용해 가로 5m, 높이 8m 크기의 사이니지를 설치했다. 인도 델리 최대 쇼핑센터인 엠비언스몰 바산트군즈에서 쇼핑객들이 LG 올레드 사이니지 조형물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경제적 어려움보다 무관심이 더 고통"

인도의 사회평론가인 산토시 데사이는 "인도는 카스트 제도에 따라 철저하게 신분이 분리된 계급 사회"이라며 "코로나 이전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을 노동자로 고용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급 주택단지에 드나드는 걸 용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비위생적인 곳에 거주하는 가사 도우미는 바이러스의 1차 보균자이자 감염원이라는 인식이 퍼져 자신들의 공간에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내쫓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빨래터와 판잣집들이 얽혀 있는 뭄바이 시내의 '도비 가트'. 도비는 빨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카스트 계급에서 하층에 속한다. [중앙포토]

대형 빨래터와 판잣집들이 얽혀 있는 뭄바이 시내의 '도비 가트'. 도비는 빨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카스트 계급에서 하층에 속한다. [중앙포토]

일자리를 잃은 가사 도우미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십수년간 일하며 함께 지내던 이들의 무관심이 더 고통스럽다"고 얘기한다. 12년 동안 한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했던 자한(56)은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고용주에게 콩과 우유 등 약간의 식량을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의사이자 사업가였던 고용주는 자한에게 "왜 나한테 그런 걸 달라고 하느냐. 정부에 부탁하라"고 답했다. 한 가정에서 15년간 집안일을 도왔던 데비 역시 "직업을 잃고 나서, 그 집에서 '살기는 어떠냐, 건강하냐, 손자들은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 한통 걸어온 적 없다"며 허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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