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 극장가에 방화 "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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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흥행 비수기인 11월에 들면서 영화관에 한국 영화가 일제히 내걸려 「방화란 비수기에나 거는 스크린쿼터용 프로」임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16일 현재 서울 시내 29개 개봉관 중 한국 영화를 상영 중인 곳은 19개소.
매달 평균 7∼8개소에 비해 12여 곳이 늘어났다.
극장별로 보면 중앙-『강남 꽃순이』, 스카라-『육담구담』,신영·코리아-『단단한 놈』, 피카디리-『25불의 인간』,허리우드-『며느리 밥풀 꽃에 대한 보고서』, 서울시네마- 『서 울 공주』『신사동 제비』, 브로드웨이-『그후로도 오랫 동안』, 시네 하우스-『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등 주요 극장이 방화일색이다.
이중 몇 편은 중순께 종영되면서 『졸병수첩』『오색의 전방』『빨강바다』『파행』등 역시 방화에 자리를 넘겨 줄 예정이다.
이처럼 요즘 영화관에 방화가 몰린 것은 대부분의 영화관이 크리스마스·신정 등 겨울 방학 대목을 앞두고 한국 영화 의무 상영 일수 1백46일 (스크린쿼터)을 빨리 채우기 위한 속셈으로 풀이된다·극장주로서는 흥행이 되면 좋지만 안 되어도 그만인 식으로 비수기에 방화를 건 셈이고 방화 제작업자는 개봉관이 태부족한 현실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감수하는 형편이다.
특히 이번 비수기에는 개봉관 종영 작품이 재개봉관으로 가던 종전과는 달리 개봉관에서 개봉관으로 같은 프로를 돌리는 이상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이 경우는 흥행에 자신이 없는 새 영화를 걸기보다는 첫 개봉관에서 히트한 작품을 골라 안전위주로 가자는 극장의 상업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단성사에서 20만명 이상을 동원한 『그후로도 오랫동안』은 브로드웨이로 옮겨졌고, 예상외의 흥행 성적을 거둔 『달마가 동쪽으로···』은 명보극장에서 시네 하우스로 갔으며, 지난 여름 대한 극장에서 많은 관객을 끌었던『불의 나라』도 현재 금성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또 연초 8만여 관객을 동원한 『상처』도 동아극장에서 재상영중이다.
방화 중 올 최대 흥행을 맛본『서울 무지개』는 25일부터 서울 시네마에서 재상영키로 돼있고, 중년층의 호응이 컸던 『아낌없이 주련다』도 18일부터 대한 극장에서 명동극장으로 옮겨간다.
이 같은 개봉관→개봉관식의 방화 상영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비수기에만 집중적으로 방화를 배치하는 것도 안 좋은 현상인데 거기에다 개봉관이 열심히 만든 새 작품을 외면한채 장사 위주로 재탕하는 것은 너무 심한 상업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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