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LB·내셔널지오그래픽·디스커버리…“이게 어디서 만든 옷이야?”

중앙일보

입력

디스커버리(방송 채널), 내셔널 지오그래픽(비영리단체), 코닥(필름 브랜드)…

언뜻 패션과 관련 없어 보이는 패션 브랜드가 승승 장구중이다. 코로나19로 패션 업계가 한껏 위축됐던 지난해에도 깜짝 호실적을 냈을 정도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표 권리, 즉 라이선스(license)를 사와 국내에서 제품을 기획·생산·판매 하는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라는 점이다.

보통 패션 브랜드는 크게 수입 브랜드와 국내 브랜드(내셔널 브랜드)로 나뉜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라이선스 브랜드다. 상표는 외국의 것이지만, 제품을 생산하는 주체는 국내 기업이다. 과거엔 주로 패션 브랜드 상표를 들여와 국내 실정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면, 최근엔 패션 브랜드가 아닌 상표를 사와 패션 브랜드로 선보이는 것이 대세가 됐다. 이른바 비(非)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다.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 로고 사진 각 사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 로고 사진 각 사

F&F의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과 ‘MLB’는 각각 다큐멘터리 채널과 프로야구 리그의 상표를 가지고와 패션 브랜드로 만든 사례다. 더네이쳐홀딩스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역시 환경 관련 비영리단체이자, 방송 채널로 잘 알려진 브랜드를 패션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2020년 론칭한 하이라이트브랜즈의 ‘코닥어패럴’은 2012년 파산한 미국의 카메라 필름 제조업체의 브랜드 ‘코닥’의 라이선스를 사와 만든 패션 브랜드다.

이들의 성공에 힘입어 팬암(항공사)·CNN(방송 채널)·빌보드(음악 차트)·폴라로이드(필름 제조사) 등도 패션 시장에 본격 출격을 앞두고 있다. 모두 인지도나 호감도가 높은 브랜드를 국내에서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 시키는 형태다.

패션 브랜드가 아닌 상표를 활용한 패션 브랜드가 인기다. 이른바'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패션 브랜드가 아닌 상표를 활용한 패션 브랜드가 인기다. 이른바'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라이선스 브랜드, 코로나도 뚫었다
3일 패션 업계에 따르면 이들 비패션 라이선스 브랜드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MLB와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보유한 F&F는 2018년 6683억원, 2019년 9103억원, 지난해엔 837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72% 오른 2857억원이다. 특히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전년대비 11% 성장했다.

국내 주요 라이선스 브랜드 전개 기업 매출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주요 라이선스 브랜드 전개 기업 매출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유한 더네이쳐홀딩스는 2018년 1411억원, 2019년 2353억원, 2020년 2908억원으로 꾸준한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 1분기 매출도 지난해 동기 대비 30.5% 증가한 651억원으로 집계됐다.
코닥어패럴은 지난해 2월 론칭해 당해 매출 약 170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 6월 중순에 올해 매출 목표인 600억원을 약 90% 이상 달성했다.

이들 비 패션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는 지난 2016년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이들 비 패션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는 지난 2016년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명품과 SPA 사이 파고들었다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의 인기 요인으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제품이 꼽힌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유행을 쫒기보다 대중적인 디자인과 품질, 중간 정도의 가격대를 내세운다. 비싼 명품 브랜드와 저렴하지만 품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의 틈새를 노렸다.

특히 한동안 패션계 주요 흐름이었던 ‘로고 플레이’ 덕을 톡톡히 봤다. 단순한 디자인에 로고를 크게 강조하는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브랜드 로고 자체의 감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라이선스 브랜드가 주목받았다.

국내 기업인만큼 롱패딩·맨투맨 티셔츠 등 국내 패션 시장의 흐름에 맞는 제품을 빠르게 기획 및 생산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공 요인이다.

단순한 디자인에 로고를 강조하는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로고 자체의 감성으로 승부하는 라이선스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사진 코닥어패럴

단순한 디자인에 로고를 강조하는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로고 자체의 감성으로 승부하는 라이선스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사진 코닥어패럴

무엇보다 세계관을 잘 구축한 브랜드를 패션에 접목시켜 신선함을 살렸다. 주로 다큐멘터리 채널이나 스포츠 관련 브랜드, 필름이나 카메라 관련 브랜드 등 ‘감성’을 자극하는 호감도 높은 브랜드를 선택한 것도 공통점이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선호하는 아웃도어 감성을 패션과 잘 접목시켰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디스커버리 모두 아웃도어 감성과 잘 어우러지는 다큐 채널, 코닥은 필름 브랜드로 여행과 연결될 수 있는 요소를 풀어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옷을 통해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며 “기존 패션 브랜드가 접근하지 못했던, 이른바 ‘감성’을 입는 MZ세대들의 니즈를 제대로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브랜드가 가진 본래의 '감성'을 패션으로 풀어 냈다.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브랜드가 가진 본래의 '감성'을 패션으로 풀어 냈다.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시기적으로는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아웃도어 브랜드의 공백을 잘 메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일명 ‘아재 패션’으로 전락한 아웃도어 브랜드 대신, 일상에서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비어 있는 시장을 장악했다는 얘기다.

K-패션의 쉬운 길? 계약 만료 변수도

업계 내에선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 상표를 국내용으로 잘 만들어 다시 역수출까지 한다는 점에서 K-라이선스 브랜드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어쨌든 브랜드 자체는 외국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패션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 브랜드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기까지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라이선스 브랜드가 효율적일 수 있다. 브랜딩에 공을 덜 들이고 품질에 더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태생적으로 라이선스 계약으로 유지되는 브랜드라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라이선스 계약 만료 이후 해외 기업이 계약을 종료하거나 한국에 직접 진출할 수도 있다.

필름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살려 단편영화 축제를 지원하는 코닥어패럴. 사진 코닥어패럴

필름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살려 단편영화 축제를 지원하는 코닥어패럴. 사진 코닥어패럴

유행에 편승해 너무 많은 비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가 범람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할만한 부분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가 그랬듯, 비슷비슷한 이미지의 브랜드가 자칫 소비자들에게 지루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라이선스 브랜드가 잘 된다고 해서 괜찮은 상표를 사와 붙이면 다 될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며 “브랜드 이미지는 좋아도 패션과 관련이 없는 상표를 패션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