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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없애고 싶은 셋 중 둘 노 정부서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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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진=김태성 기자

김희상(사진)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북한은 비무장지대 (남측) 선전물과 한미연합사를 없애고 북방한계선(NLL)을 철폐하려고 했다"며 "북한이 가장 없애고 싶어 한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현 정부에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무장지대 선전물은 이미 철거됐고, 한미연합사는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면 자동적으로 해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국방정책을 담당해온 김 전 보좌관은 지난달 31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작권 환수를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10월에 결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먼저 합당한 군사역량을 갖추고 한.미 동맹에 견줄 대체역량을 마련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비전과 목표가 기본적으로 불합리하다"며 "김정일 체제만 키워주고 안보 태세는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 "계속 북한에 퍼주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핵도 개발하고 위협만 증가해 사실상 햇볕정책은 실패한 것이란 인식을 국민이 느끼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핵을 정부가 방치했다고 해도 아니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 주)

-2004년 1월 말 국방보좌관에서 물러날 때 노무현 정부 내의 자주파(※대미 자주노선을 주창해 온 그룹으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와 대립)가 승리한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노 대통령은 왜 자주파의 손을 들어줬다고 생각하나.

"노 대통령이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2003년 5월)만 해도 미국에 대해 상당히 유연했다. 이종석(현 통일부 장관, NSC 사무차장으로 청와대 근무)씨가 들어오기 전이다. 당시 미국은 DJ(김대중 대통령)에게 실망해 우리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노 대통령에게서도 좀 지나면 본색이 나오겠지 했는데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미군이 없었더라면 나도 강제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한 게 미국 사람들에게 확 먹혀들었다. 그런데 이후가 문제였다. 그때 내가 나온다고 했는데 고영구(당시 국정원장)씨가 군대 내 여론으로 볼 때 쫓아내서 좋을 게 없다고 보고한 모양이다. 노 대통령도 '그럼 놔두라'고 했는데 문재인씨와 이종석씨가 대통령을 설득해 다시 바꿨다는 말을 들었다. 윤영관 당시 외교부 장관도 회의에서 대판 언성을 높였는데, 한 달 후엔가 장관직을 그만두었다. 그런 다음에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얘기해 줄 사람도 없고 하니 이제는 완전히 극단까지 와버린 거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정부가 추진하는 것을 두고 한미연합사 해체와 동맹 약화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수란 말 자체에 오해가 내포돼 있다. 정부도 환수 대신 단독행사란 표현을 쓰고 있다. 전작권은 환수든 단독행사이든 CFC(한미연합사령부)와 UNC(유엔사령부)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고, 한국의 안보 태세 기축을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CFC 해체는 첨단의 위기관리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증원에 대한 기대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CFC가 한강 이북에 있다는 것은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다. 평택으로 옮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평택에 별도 기지를 만든다 치자, 미군이 가버리면 5조~6조원만 날리게 된다. 평택에 그 많은 돈을 들이면서 한편으로 CFC를 없애라고 하면 그게 말이 되느냐. 지금이라도 계룡대로 옮기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때 규모 등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내가 파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것은 사실이다. 국방부 검토 때는 5000명 선 파병이었고 나는 7000명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파병이 전략적 기회라고 봤다. 롤리스(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농담삼아 '잘만 되면 시멘트공장만 되살려도 이라크 전체를 회복하는 데 한국이 크게 한 건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한국이 이라크전 파병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 강력한 한국 사단급 규모가 이라크에 떡 버티고 있었으면 아마 한국의 위상이 엄청 달라졌을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파병과 관련해 반대 의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안 보낼 수는 없겠다 하는 수준이었다. 이종석씨는 말을 잘 안 했다. 따로 대통령과 이야기하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나는 7000명을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국방장관은 얼마를 생각하느냐'고 하니까 조영길 당시 국방장관이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3000명이라고 하는 거다. 나는 깜짝 놀랐다. 국방부 내에서도 5000명 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로부턴가 힘(압력)을 받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50여 년의 한.미 동맹 역사에서 지금처럼 불협화음이 높고 갈등에 대한 우려가 깊은 적이 없다는 시각이 있다.

"양국 정부 당국자를 만나보면 앵무새처럼 '한.미 관계는 성숙됐고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워싱턴의 전문가들이나 의회 사람들은 미국의 본심을 말하는 것 같다. 국제관계소위의 한 전문위원은 한.미 동맹을 '못질 직전의 관 속에 든 시신'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서 자꾸 동맹 균열이 아니라고 하니 신뢰성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면 남북한 전략 균형이 깨지게 되는데.

"북한이 지난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전화를 했다. 그때 '북한에 대한 과잉 대응은 자제하자'고 노 대통령이 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움직임과 달리 우리는 따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핵과 미사일은 한국에 재앙이 된다. 2003년 6월 일본 내각조사실의 위성정보담당관이 내게 찾아와 북한 핵무기는 최소한 2개에서 많으면 6~7개에 이른다고 했다. 북한이 핵을 어디다 쓰겠나. 미국에 섣불리 사용했다가는 평양이 쑥대밭이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사실상 핵 강대국이고, 그런데 어디 북한이 일본에다 핵을 때리겠나. 한국만이 효과적인 위협이고 도발 대상이 될 수 있다."

-남북한은 동족인데 우리를 향해 핵을 겨누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있다.

"주민 200만~300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금수산기념궁전(※1994년 7월 사망한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한 시설)을 만드는 판에 핵을 우리에게 안 쏜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북한의 최고 명절이라는 지난 2.16(김정일 생일)과 4.15(김일성 생일)에 주민들에게 선물을 돌리지도 못했다. 고사 위기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 안정을 보장해 주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김정일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못하고 개방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한 측근이 김정일에게 북도 개방해야 살 수 있다고 했더니 김정일은 '당신, 나 죽으란 말이오'라고 했다고 한다. '동유럽에 그렇게 많은 국가가 체제 개방을 했지만 지도자가 살아남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얘기였다는 것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반복될 것이다."

-북한이 내부 혼란 상태에 빠지면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하기 위한 '작계 5029'가 필요한데 NSC는 주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며 검토작업을 중단시켰다는데.

"주권침해라는 건 난센스다. 안보라는 건 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에 대비하는 것이다. 왜 그런 걸 만들지 못하게 하느냐는 건데.(그건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참 답답한 이야기다."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폐지와 새 해상경계선 설정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NLL 문제가 나오니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내가 턱도 없는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했다. 같이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배가 다니다가 그물을 끊을 수도 있고 경비정이 들어오면 충돌이 생길 수도 있다. NLL이 무력화된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 이 문제는 해군에서도 심각하게 보고 있고, 올해 초 서해 2함대사령부에 가서 의견 들어봤더니 큰일난다고 하더라."

-안보 문제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가 매우 큰데 현 정부의 안보정책은 정말 문제가 있나.

"안보를 지키는 첫째 기둥은 국민의 안보에 대한 의지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 같은 이념 갈등에 남남 갈등까지 보태 국가 정체성에 동요가 온 것이다. 국군의 방위태세도 별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병력을 줄인다, 뭘 바꾼다 해서 소란스럽다. 중요한 게 한.미 군사동맹 관계와 북한의 도발 억제였는데 점차 형해화(形骸化)해 가는 것 같다. 대북정책의 기본은 평화정착과 화해의 두 바퀴가 같이 굴러가야 하는 건데 화해협력만 계속 강조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위협이 커져만 가는 것이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되나.

"어떻게 점수를 주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김희상씨는 누구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11개월간 청와대 비서실 국방보좌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국방보좌관 재임 때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 협력적 자주국방 계획 등 현 정부의 굵직한 국방 현안을 처리했다. 이라크 파병 규모와 안보정책 방향 등을 둘러싸고 청와대 외교안보팀 내부에서 갈등을 빚었고, 2004년 1월 보좌관직을 그만뒀다. 국방보좌관을 그만둔 뒤 올 2월까지 2년간 비상기획위원장(차관급)을 맡았다. 1988년부터 93년까지 청와대 비서실 안보정책비서관과 국방담당 비서관을 지내는 등 군사전략에 밝은 국방전문가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과 초대 국방대학교 총장을 거쳐 2000년 11월 예편했다. 경남 거창 출생(61)으로 경복고와 육사(24기)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시펜스버그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 전시작전통제권=전쟁 때 군의 작전을 지휘.통제하는 권한으로 통상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6.25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국제연합사령관에게 작전통제권을 위임했다. 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 창설과 함께 작전통제권은 다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됐다. 실제 권한은 연합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이 협의해 '공동행사'하도록 돼 있다. 평시 작전통제권은 94년 우리 군에 환수됐다.

◆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NLL)=남북한 간에 설정된 해상경계선. 주로 해안선이 복잡한 서해상의 분계선을 일컫는다. 1953년 7월 정전 직후 클라크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군과 한국군의 활동한계선으로 그었으나 이후 해상경계선으로 굳어졌다. 통상 서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5개 섬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사이의 중간선을 말한다. 72년까지 이를 인정하던 북한은 이듬해부터 문제를 제기해 왔고 최근에는 새 경계선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前]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제19대)

1945년

*** 바로잡습니다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은 본지 8일자 3면 '현 정부 첫 국방보좌관 김희상씨 인터뷰'기사 가운데 이라크 파병 회의와 관련, "대통령이 파병 규모를 묻자 (내가)3000명이 아니라 4000명"이라고 말했으며 "위로부터 압력은 받지 않았다"고 9일 알려왔다. 조 전 장관은 "당시 이라크 파병 규모는 1~2개 여단과 사단사령부를 포함해 4000명 정도가 적절하다는 것이 국방부의 의견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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