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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의 복지부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지하철과 터널이 폭우에 잠기며 100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의 얼마 전 수해 참사가 천재(天災)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상부 명령만을 기다리며 꼼짝 않는 중국 관료사회의 복지부동 풍조가 낳은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비극이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의 성격을 띤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3일간 1년 강우량에 맞먹는 물 폭탄이 쏟아지며 천 년에 한 번 있을 홍수라는 말을 낳았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밀려든 물에 비명횡사하는 참극이 벌어진 데는 최근 중국 정치 풍토와 관련된 인재가 작용했다.

수마가 할퀴고 간 터널 앞엔 자동차가 쓰레기처럼 쌓였다. [중국 신화망 캡처]

수마가 할퀴고 간 터널 앞엔 자동차가 쓰레기처럼 쌓였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에 따르면 정저우 기상국은 사고 발생 전 이미 여러 차례 경고음을 발신했다. 수업을 중지하고 업무를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은 여느 때와 같이 운행했고 결국 대참사를 빚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중국 지하철 내부 직원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따르면 정저우 지하철운영 관리자, 당직을 선 열차배차 책임자, 교통관리부문 모두 긴급상황 발생 시의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들 상급기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도시가 마비되는 대혼란 속에서도 허난성TV는 재난방송은커녕 여전히 항일(抗日)드라마만 방영했다.

침수된 지하철에서 탈출하는 정저우 시민들. [중국 펑파이망캡처]

침수된 지하철에서 탈출하는 정저우 시민들. [중국 펑파이망캡처]

중국 사회의 폐쇄적인 특성상 이런 문제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둬웨이는 그러나 정저우 참사 이후 있었던 저장(浙江)성 고위 관리의 언행에서 정저우 지하철 운영자의 잘못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저우 지하철 비극 발생 4일 뒤 항저우(杭州) 지하철을 찾은 정산지에(鄭柵潔) 저장성 성장이 “돌발상황 발생 시 층층의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첫 시간에 바로 신속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정저우 지하철 관계자들이 상부 지시만을 기다리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는 게 둬웨이의 설명이다.

지난달 20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이 특대형 폭우에 잠겼다. [중국 건강시보망 캡처]

지난달 20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이 특대형 폭우에 잠겼다. [중국 건강시보망 캡처]

그렇다면 정저우 지하철 관계자들은 왜 상부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나. 현장에 있는 관리들이 백성에 대해 책임지는 게 아니라 상사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자세로 일하다 보니 이런 비극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압력형(壓力型) 체제’로 층층이 보고하고 층층이 지시를 받다 보니 제때 대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둬웨이는 또 이 같은 인민의 비극이 어떻게 인민의 이름을 쓰는 신문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1면에 보도되지 않는지 의문을 표했다. 7월 20일의 정저우 대참사는 인민일보 21일자 7면에 실렸다. 1면은 인구 문제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산당 100년 발언이 책자로 나왔다는 기사 등으로 장식됐다.

인민의 이름을 가진 중국 인민일보는 인민의 비극이 벌어진 정저우 수해 참사 소식을 1면에서 다루지 않았다. 1면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관련 기사 등으로 채워졌다. [중국 인민망 캡처]

인민의 이름을 가진 중국 인민일보는 인민의 비극이 벌어진 정저우 수해 참사 소식을 1면에서 다루지 않았다. 1면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관련 기사 등으로 채워졌다. [중국 인민망 캡처]

납작 엎드린 관료사회의 모습은 많은 국가에서 나타나긴 한다. 적극적으로 일하다 돌팔매 맞기 쉬울 때 보신주의가 성행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중국 관가에 이런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 원인과 관련 지난달 중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보도가 눈길을 끈다. SCMP는 시진핑 주석이 연초 중앙기율검사위원회 회의에서 “내 서면지시가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복지부동의 중국 관료사회를 질타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내 서면지시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며 “일부 관리는 지도부가 작성한 서면지시를 받아야만 움직이고, 그런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 서면지시가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복지부동의 중국 관료 사회를 질타했다. [중국정부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 서면지시가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복지부동의 중국 관료 사회를 질타했다. [중국정부망 캡처]

시 주석으로선 관리들이 진취적으로 일하지 않는 데 대해 울분을 토한 것이다. 한데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중국에선 지난 2019년 어떤 상황에서 간부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상부의 지시를 구해야 하는지를 명시한 당의 규정이 통과됐고 그 이후 서면지시 관행이 강화됐다고 한다. 특히 시 주석의 개인적인 지시를 받은 경우엔 그 지시 이행 과정을 철저하게 보고하도록 했다. 이는 관료사회를 장악해 시 주석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그 결과 중국 관가엔 복지부동 바람이 불게 됐다. 층층의 명령만 기다리다 빚어진 정저우 지하철 참사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닌가.

허난성TV는 재난방송 대신 항일 드라마 틀고 #물 폭탄 쏟아지는데 명령 기다리며 복지부동 #시진핑 권력 강화 위한 관료사회 장악으로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보신주의 만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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