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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 눈에 한국은 ‘졸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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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출판 행사를 겸한 한 세미나가 눈길을 끈다. 두 가지 점에서다. 하나는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져 피 흘리게 될 것”과 같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중국 지도자의 거친 말이 왜 나오는가에 대한 중국 자체의 진단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중국 세미나에서 중국이 어떻게 한국을 보고 있는가의 속내가 드러난 점이다. 행사는 중국의 글로벌싱크탱크(CCG)가 주최한 것으로, 『나는 세계를 향해 중국을 말한다(我向世界說中國)』는 신간 소개와 함께 ‘중국의 새로운 서사(中國新敍事)’라는 주제로 각계 전문가의 토론이 이어졌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 시 주석의 한국 답방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9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 시 주석의 한국 답방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시스]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대부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관련이 있다. 이번 행사도 시 주석이 지난 5월 말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대외 선전(外宣)’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계기로 작용했다. “국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강화해 진실하고 입체적이며 전면적인 모습의 중국을 알리라”는 시 주석의 요구에 맞춰 세미나는 중국이 어떻게 국제 사회에서 담론을 주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중 관심을 끈 건 CCG의 특별초청 연구원인 추인(儲殷) 중국국제관계학원 교수의 발표다.

중국의 언어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조차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연설을 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의 언어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조차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연설을 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추 교수는 현재 중국의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대외 선전의 대내 선전화(外宣的內宣化)”라는 기괴한 현상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을 상대로 해야 할 선전이 중국 국내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세 개의 문제가 발생했다. 첫 번째는 선전 대상이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대외 선전의 타깃은 외국인이다. 한데 최근 중국의 외교관, 학자, 전문가의 말은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외교 무대에서 하는 말도 이게 외국인을 향한 것인지 헛갈린다는 지적이다.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새로운 서사’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려 중국의 ‘대외 선전’ 효과를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새로운 서사’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려 중국의 ‘대외 선전’ 효과를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두 번째는 이처럼 대외 선전의 대상이 외국인이 아닌 국내 중국인을 향하게 되면서 그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고 아마추어적으로 흐르고 있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시 주석이 말한 “머리가 깨져 피 흘릴 것” 등의 거친 표현이 그런 경우로 보인다.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행사이건만 친구들 사이에서나 할 말이 나오고 말았다. 세 번째는 인터넷 발달에 따라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외 선전이 포퓰리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클릭 수를 높이려다 보니 표현이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추인 중국국제관계학원 교수는 “한국인의 허풍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졸부를 보는 느낌이 들어 반감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바이두 캡처]

추인 중국국제관계학원 교수는 “한국인의 허풍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졸부를 보는 느낌이 들어 반감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바이두 캡처]

자, 그럼 중국은 어떻게 대외 선전의 효과를 높일 것인가. 추 교수는 “중국 외교관의 외국어 능력은 향상됐지만 이야기를 말하는 능력이나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은 퇴보해 중국의 국제적인 이미지가 추락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국제 사회에서 반중 세력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중국과 반중 세력이 설전을 펼칠 때 이를 보는 제3자에게 중국의 입장이 호소력 있게 전달되면 그게 중국이 이기는 길이라고 말한다. 제3자의 공감은 어떻게 끌어낼까. 자신의 마음으로 미루어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방법을 쓰자고 그는 주장한다.

중국의 신간 『나는 세계를 향해 중국을 말한다』는 중국의 대외 선전 효과를 어떻게 높일지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중국의 신간 『나는 세계를 향해 중국을 말한다』는 중국의 대외 선전 효과를 어떻게 높일지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여기서 한국을 보는 중국의 속내가 등장한다. 추 교수는 “한 이집트 사람이 민족의 자부심을 뽐내는 말을 하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매우 낙후해 그가 큰소리치는 것 외에 할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자기 나라를 과장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인이 이집트 사람보다 더 허풍을 떨어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추 교수는 “왜 이집트인의 허풍은 받아들일 수 있고 한국인의 허풍은 받아들이기 어렵나”에 대해 “한국인은 돈이 있다. 부유해지기 시작한 지 몇 년 안 됐다. 그들이 허풍을 떠는 걸 듣다 보면 ‘졸부’를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거친 언사의 전랑(戰狼) 외교관으로 유명하다. [AP=연합뉴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거친 언사의 전랑(戰狼) 외교관으로 유명하다. [AP=연합뉴스]

“그래서 반감이 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중국을 볼 때 중국인이 한국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중국은 외국인을 상대로 ‘중국 이야기’를 전할 때 그 동기와 대상, 전체 구조 등에 있어서 보다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세미나에서 한국을 예로 든 건 아마도 중국인 대다수의 공감을 받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일반인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씁쓸하다. 한국 내 반중 정서도 높지만, 중국 내 반한 정서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수교 29주년을 한 달 앞둔 한중 관계의 현주소다.

‘대외 선전’ 효과 높이기 세미나 참석 중국 학자 #이집트 사람이 큰소리 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한국인이 ‘허풍’ 떠는 건 봐주기 어렵다고, 왜? #돈 좀 있는 '졸부' 느낌 들어 반감 갖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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