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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미·중 전쟁나면 러시아는 어느 편 설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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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미 군사훈련에 반대한다는 중국이 9일부터 닷새간 러시아와 병력 1만 이상을 동원한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한다. 중·러는 2018년부터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데 과거 러시아에서 갖던 훈련을 올해 처음으로 중국 땅에서 벌인다. 각종 장갑차와 군용기 등 첨단 전투 장비를 투입하며 중·러 합동 지휘본부도 설치한다. ‘지역안보 공동수호’를 훈련 목표로 내세웠지만, 미국이 타깃임은 삼척동자도 눈치챌 일이다. 한데 미·중 간 전쟁이 터지면 러시아는 어느 편에 설까? 중국 편에 설 수 있을까?

지난 2019년 러시아 오렌부르크주에서 열린 러시아 주축의 5개국 군사훈련에 파견된 중국 인민해방군 모습. [뉴시스]

지난 2019년 러시아 오렌부르크주에서 열린 러시아 주축의 5개국 군사훈련에 파견된 중국 인민해방군 모습. [뉴시스]

이와 관련 지난 6월 중순 중국의 글로벌타임스가 중국주재 러시아 대사인 안드레이 데니소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중·미 간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그러자 데니소프 대사는 “러시아와 미국 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없듯이 미국과 중국도 충돌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그는 “이런 충돌은 모든 인류를 몰살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편을 드는 게 의미가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중국 언론이 듣고 싶어했을 “중국 편에 서겠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는 지난 6월 중국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미국의 충돌이 없듯이 미중 충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 캡처]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는 지난 6월 중국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미국의 충돌이 없듯이 미중 충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 캡처]

이보다 며칠 앞선 6월 11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엇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에 대해 행동을 취하면 러시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푸틴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답을 할 수 없다”며 “다행인 건 아직 군사충돌이 생기지 않은 점”이라고 답했다. 어려운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간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6월 중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바이든은 러시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뉴스1]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6월 중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바이든은 러시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뉴스1]

데니소프나 푸틴의 대답은 모두 중국엔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뜨거운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자랑하며 중·러가 역대 최고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가하고 있다는 자화자찬 상황과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5년부터 매년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있어 ‘준(準) 군사동맹’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미·중 사이에서 몸값 올리기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뜨거운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뜨거운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은 묘하게도 바뀌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소련 견제를 위해 비밀리에 중국을 찾은 게 50년 전인 1971년 7월이다. 한데 정확히 반세기 만에 미·중·러의 삼각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이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압박을 위해 러시아에 노골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중순의 바이든-푸틴 정상회담이 대표적인 경우다. 러시아는 미·중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게 곧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에서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2018년 9월 러시아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서 냉전 시대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인 ‘보스토크 2018’를 실시했다. 사진은 훈련에 참여한 중국군 작전지휘본부의 모습. [뉴시스]

러시아와 중국은 2018년 9월 러시아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서 냉전 시대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인 ‘보스토크 2018’를 실시했다. 사진은 훈련에 참여한 중국군 작전지휘본부의 모습. [뉴시스]

지난 7월 중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한 보도가 눈길을 끈다. 중국 외교성명의 영문판을 살펴보니 중국과 ‘ironclad’(쇠처럼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로 표현되는 국가가 14개에 달하는데 재미있는 건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가 없다는 것이다. 14개 나라엔 파키스탄과 브라질, 루마니아, 케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왕이웨이(王義桅) 중국인민대학교 교수는 ‘ironclad’ 나라 사이엔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배반이 없다고 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오른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28일 타지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국방장관 회의에서 만났다. [중국 국방부망 캡처]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오른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28일 타지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국방장관 회의에서 만났다. [중국 국방부망 캡처]

준동맹이라고 하면서도 러시아와 북한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중국의 속내가 읽힌다. 중국의 유명 국제관계 전문가인 스인훙(時殷弘) 중국인민대학교 교수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본래 한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꾼다(同床異夢)”며 “지금은 미국의 압박 때문에 함께 있기를 바라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진정으로 서로 믿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믿기 어려운 러시아와 함께 군사훈련을 할까. 미국과의 충돌 때 러시아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미·중 간 전쟁이 터지면 러시아는 중립을 지킬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2년 중국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이 당시 미 부통령인 조 바이든을 백악관에서 만나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2년 중국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이 당시 미 부통령인 조 바이든을 백악관에서 만나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중국이 근년 들어 러시아와의 합동군사훈련에 열을 올리는 건 합동훈련 자체만으로도 미국이 대만 문제 등에서 섣불리 무력사용에 나서는 걸 제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러는 현재 “진짜 금은 불 속에서의 단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眞金不怕火煉)”며 밀월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어디 있겠느냐며 러시아를 유혹 중이다. 키신저가 중국을 유혹한 지 20년 만인 91년에 소련이 무너졌다. 이번엔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준(準)군사동맹’ 평가 받는 중·러 관계지만 #미·중 충돌 시 러시아는 ‘중립’ 가능성 커 #키신저 중국 비밀 방문 20년 만에 소련 붕괴 #바이든의 러시아 유혹 어떤 결과 낼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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