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원 「고난도 곡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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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호용 의원 문제가 마지막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정당 지도부는 그 동안 논리적 당위성과 현실적 입지, 당내 결속과 정국안정이라는 상반된 논리사이에서 고민스런 곡예를 해왔다.
그러나 야당과 정호용 의원, 그 어느 쪽도 설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최대지지기반인 대구에서 당 지도부의 의지에 거스르는 군중집회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제 어느 쪽이든 가부간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박준규 대표위원도 15일 충남-북·경남·제주지역 의원간담회에서『이제 협상이냐 내결 국면이냐의 선택을 해야할 입장』이라고 밝혀 정 의원 처리와 관련한 최종 결단의 시점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15일 정 의원사퇴를 반대하는 대구시민집회는 사태를 지역대결로 몰아간 점이나 당내도전행위로 간주돼 오히려 정 의원의 입지를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이춘구 사무총장이 이날 집회에 모인 인파를 보고 받으면서『그것이 정 의원에게 유리한 건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도 여권으로선 처음 겪는「반란행위」로 보고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 의원이 지난 10월 노태우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인터뷰를 통해 지도부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한 것이나 이날 지도부 의사와 상치되는 집회가 열린 것 등으로 5공 청산과 관계 없이도 정 의원문제에 대해 뭔가 매듭을 짓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 여권의 속사정이다.
만약 이 같은 사태를 방치할 경우 노 대통령은 여와 야, 어느 쪽도 장악하지 못한 불안한정국운용을 하게 된다.
14일 서울·부산·강원지역 의원간담회에서 이 총장은 일방종결을 주장하는 의원들에게 역정을 내며 연내 여야합의 종결방침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당이 일방적으로 종결한다고 내년 정국을 여권의 뜻대로 이끌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의원 측도 이런 점을 감안해 당 내 대결을 각오하는 눈치다. 그들은 대구집회를 자신들이 사주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대구·경북출신의원들을 중심으로 접촉을 강화하고 일부 비 TK세력과의 제휴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당 지도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물론 당 지도부에서도 이들을 개별접촉, 엄포성 회유를 하고있으나 현재 당내에는 정 의원과 거취를 같이할 의원이 10여명,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의원이 30∼40명 정도에 이른다는 것.
이렇게 당내의원들이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당 주도로 마무리하겠다는 노의 다짐은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 스스로도『노 대통령이 직접 나가라면 몰라도 절대 사퇴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어 결국 대통령의 결단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야당 총재들도 이러한 민정당측 사정을 고려한 듯 협상자세를 보이는 등 몇 가지 신호를 띄우고 있고 일면으론 압력을 가하고 있다. l7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도 이에 대한 논제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오는 23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은둔한지 만1년이 되는 날. 1주년을 넘길 경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간에 정 의원문제로 당내 풍파를 겪든, 여야격돌로 나가든 한차례 소동은 불가피하며 민정당이 어느 쪽을 택할지 궁금하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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