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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언론중재법, 내용도 절차도 반헌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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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정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범여 의원들은 이날 위헌 논란이 있는 언론중재법안을 사실상 강행처리했다. [뉴스1]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정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범여 의원들은 이날 위헌 논란이 있는 언론중재법안을 사실상 강행처리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6일 법안소위에 관련 법안(언론중재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상정한 데 이어 그제 완력으로 통과시켰다. 문체위원장이 야당 몫이 되기 전인 8월 말까지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 피해를 구제하고 공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언론 개혁이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했다.

27일 법안소위서 ‘유령 대안’ 강행처리 #언론단체 “대선 비판 보도 봉쇄 시도”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다. 법안 내용과 처리한 절차 모두 대단히 잘못된 입법 폭거여서다. 우선 의결 절차부터 의회민주주의에 반했다.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수정안을 만들고 문체위 수석전문위원의 의견을 반영해 의결했다는데 세부 내용은 확정하지 않은 채였다. 야당은 대안 내용을 받지도 못했다. 관례상 “이러이러한 내용을 대안으로 한다”고 고지하는데 이마저도 생략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야당에서 “여기서 대안을 본 사람이 있느냐. 유령 의결이다”란 항의까지 했겠는가. 야당 의원의 입법권 침해다.

위헌적 독소 조항도 수두룩하다.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명예훼손죄는 형사처벌을 하는데 형벌적 성격의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는 건 이중처벌 소지가 다분하다. 배상액의 기준도 실질 피해액이 아닌,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의 1000분의 1에서 1만분의 1을 곱한 금액을 가이드라인으로 못 박았다. 하한선까지 설정한 건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입법이다. 정정보도의 크기·분량·시간까지 정한 건 언론의 자율성과 편집권 침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신설한 ‘고의·중과실의 추정’ 조항은 자의적이고 모호해 실소가 나올 정도다. 기사와 제목이 다른 게 중과실인가. 최근 조국 딸 삽화 논란을 의식한 듯,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시각자료를 사용해 새로운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이라는 내용도 있다.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언론사가 지게 했는데, 이는 현행 민법과 충돌한다. 미국은 오보라 하더라도 원고(피해자)가 언론사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

이러니 언론단체와 학계에서 반발하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는 어제 성명을 내고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주적 입법이다. 향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및 정부 정책의 비판·의혹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시도로 간주한다”며 입법 저지에 나서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마땅히 언론중재법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민주당은 앞서 5·18역사왜곡처벌법과 대북전단금지법 때도 표현의 자유 침해 비판을 국내외적으로 받았었다. 이번 언론중재법을 보며 민주당이 과연 민주적인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