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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추경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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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해리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추경의 역사는 다양하다. 문재인 정부 이전 마지막 3차 추경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10년 차인 1972년에 있었다. 경기 불황이 찾아온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5.7%로 작년 동기 15.1%보다 형편없이 둔화’됐다. 석유 파동으로 석유·석탄값이 급등하고 남한강 대홍수로 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620억원 추경을 결정했다. 마지막 4차 추경은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군부 통치가 시작되던 1961년에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해인 당시 1950년에는 역대 최다 7번 추경이 편성됐다.

문 정부 4년은 추경 역사의 한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기 첫해 일자리·민생안정 목적으로 추경한 이래 현재까지 9차례 추경을 단행했다. 특히 48년 만에 실시된 지난해 3차 추경은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규모로선 역대 최대인 35조1000억원이다. 과정에서의 잡음도 상당했다. 원 구성에 합의하지 않은 야당이 불참한 채로 여당은 심사 시작 5일 만에 추경안을 단독처리했다. 두 달 후에는 59년 만에 4차 추경도 실시했다.

그사이 재정건정성 악화는 심화됐다. 문 정부 출범 당시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1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 예산안을 두고 “국가채무비율이 재정건정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 왔던 40%가 깨졌다”고 비판했던 2015년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통령이 된 후 “110%에 달하는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말을 바꿨다. 지난 24일 34조9000억원의 2차 추경안이 본회의를 통과된 후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47.2%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서민의 삶이 팍팍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추경의 실질 효과는 미지수다. 국민을 88%로 나눈 재난지원금 기준에 대한 설명도 불충분하다. 지난 추경으로 편성된 예산이 제대로 집행 안 됐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지난해 초과 세수가 30조원이 넘는데 국채상환에 인색한 점도 납득이 잘 안 된다.

밥 먹듯 꺼내 드는 이 정부의 추경 카드가 올 하반기에 또 등장하지 않는단 보장도 없다. 채무는 결국 미래세대에 짐을 지우는 일이기에 더 신중히 고심해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임기 7개월 남긴 정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