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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특별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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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특검 아니라 특검 할아비가 와봐라. 더 나오는 게 있나.”

2001년 만추(晩秋)의 어느 날, 대검 중수부의 핵심 인사가 기자들에게 호언장담했다. 검찰의 ‘이용호 게이트’ 수사 미진을 이유로 사상 세 번째 특별검사팀이 출범하게 된 데 대한 반응이었다.

특별검사 제도는 검찰의 노골적 정권 편향성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1999년 도입됐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팀과 ‘옷 로비 사건’ 특검팀이 우렁찬 고고성(呱呱聲)을 울리며 동시 출범했을 때만 해도 특검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당시 유행했던 성어(成語)를 빌리자면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었다. 환상은 깨졌고, 한시적 조직의 수사 역량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까지 일었다. 게다가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선장이었던 차정일 특검의 경력은 앞선 두 특검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의 호언장담은 진실이 계속 은폐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전이었다. ‘특검 할아비’도 필요치 않았다. 특검팀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 검찰 수뇌부의 비리 정황을 속속 밝혀냈고, 훗날 구속으로 이어진 대통령 아들의 비위 혐의까지 포착해냈다. 특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바꾸기에 충분한 결과물이었다.

그 후로도 수많은 특검팀이 명멸했다. 한창 수사 중인 세월호 특검팀까지 더하면 역대 특검팀의 수는 총 14개에 달한다. 분명한 사실은 특검의 이름과 경력이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차정일 특검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허익범 특검이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을 끌어낸 건 명쾌한 입증례다. 모든 수사기관의 기념비를 다시 훑어봐도 김 전 지사 정도의 권력 실세를 법으로 완벽하게 패퇴시킨 전례는 찾기 어렵다. 그것도 허 특검 표현대로 ‘외부적으로 험악하고 내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말이다.

허 특검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헌신과 열의 ▶철저한 증거 확보가 수사 성공의 열쇠라는, 오래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유혹과 편견·과욕에 사로잡혀 기본을 망각한 검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증거가 말하는 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그의 교과서적 발언이 복음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