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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공간' 철거일인데…유족 반발에 발돌린 서울시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남측에 설치된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이하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하기로 하면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철거 기한인 26일 오전에도 철거를 위해 현장을 찾았지만 유족들의 반발에 부딪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서울시는 ‘기억공간을 설치한 고(故) 박원순 전 시장 때부터 한시적 운영을 전제로 한 시설’이라는 입장인 반면, 유족들은 ‘철거에 관한 합의는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때 합의” vs “재설치 협의”

사흘 째 발걸음 돌린 서울시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왼쪽)과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이 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왼쪽)과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이 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26일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는 오전 7시30분 쯤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아 유족들 설득에 나섰다. 이날은 서울시가 지난 5일 예고한 철거일이다. 지난주부터 이곳에서 농성중이던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등 시민단체와 유가족의 반대는 이날도 계속됐다.

이날 기억공간에는 ‘기억을 금지하지 말라. 세월호 지우기와 세월호 기억관 철거를 중단하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한때 기억공간을 둘러싼 철제 울타리 위로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시민이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기억공간 철거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시민은 현장을 지키던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강제철거 계획 없어…박 시장 때 안내”

26일 서울시가 낸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 관련 입장. 서울시.

26일 서울시가 낸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 관련 입장. 서울시.

서울시 관계자는 “유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철거 공문을 전달하려 했지만 모두 거부했다”며 “(그러나) 강압적으로 철거할 계획은 없다. 일단 돌아간 후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23일부터 내부 사진, 물품 등을 정리할 계획이었으나 사흘 연속 무산됐다. 23일 유족과 1시간 20분 가량 대치하다 철수했고, 24일에도 두 차례 방문했다 빈손으로 돌아가야했다.

서울시는 입장문을 내고 “전임 시장(박원순 전 시장)때부터 새로운 광화문 광장은 어떤 구조물도 설치하지 않는 열린 광장으로 조성되는 것으로 구상했고,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라며 “유가족들에게도 일관되게 안내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정 구조물 조성·운영은 이 같은 취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2019년 4월 박 전 시장이 설립을 추진했다.

세월호 단체, “공사중 임시이전…협의하자”

세월호 유족,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기억공간 물품 정리를 위해 나온 서울시 공무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유족,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기억공간 물품 정리를 위해 나온 서울시 공무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유족들은 ‘서울시의 철거 안내는 있었지만 박 전 시장과 논의중이었던 사안으로 합의된 바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4·16연대는 “공사 중에는 임시 이전할 수 있고, 완공 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취지에 맞게 위치는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며 “기억공간 존치나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꼭 광화문광장이 아니라도 서울 시내에 기억공간을 대체할 장소는 마련해달라는 요구다. 시민단체 측은 서울시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 무기한 농성 방침을 밝힌 상태다.

기억공간 철거 문제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민변은 “서울시의 기억공간 철거 강행은 국제인권법상 퇴행 금지의 원칙,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의 적극적 보장을 위해 부담하는 최소한의 의무와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해 피해자와 시민의 기억과 추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시는 내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조성되는 국가 추모시설(가칭 4·16 생명안전공원)에 기억공간 기능을 이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억공간 철거 후 전시물은 일단 서울 기록원에 임시 보관했다가 국가 추모시설로 이관을 협의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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