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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지옥 겪은 청해부대 병사, 자화자찬 여념 없는 청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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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코로나 집단 감염 참사가 일어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지난 21일 현지 항구에서 출항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코로나 집단 감염 참사가 일어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지난 21일 현지 항구에서 출항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감염 참사의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제까지 문무대왕함 승조자 301명 가운데 27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90%에 이르는 비율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사다.

38도 환자가 40도 환자에 병상 내준 극한상황 #“수송기 급파는 대통령 뜻”이라는 용비어천가

문무대왕함 34진을 파견한 게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지 만 1년이 지난 올 2월의 일인데, 이때에도 군과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평소 유사 사태를 대비해 배치되는 외과의와 마취전문의 이외에 코로나에 대응할 수 있는 군의관이 없었다. 평소 상황이었다면 몰라도 코로나 유행 상황에서의 의료 대응으로선 너무나 안이했다. 군의 대책은 판별력 낮은 신속항체검사 키트를 제공한 게 전부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화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 초기에 의심 환자가 나왔을 때 신속검사에서 나온 음성 판정을 과신했다가 일파만파로 퍼졌다는 것이다. 한 승조원은 선내 병실에 먼저 입원해 있던 38도 고열 환자가 40도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고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문무대왕함에서 어떤 참사가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증언이다. 증상자가 100명이 넘어선 뒤에야 국방장관에게 보고가 올라갔다는 사실도 어처구니없다. K방역 운운하던 한국은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청와대는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르고 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은 보고를 받으시자마자 즉시 공중급유가 가능한 수송기를 급파하라고 지시하셨다”고 했다. 공중급유수송기 급파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 문 대통령이었다고 용비어천가를 부른 셈이다. “대통령님께서 밤잠이나 제대로 주무실까 하는 걱정도 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 국민 여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사안의 심각성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발언을 한 장본인의 직함이 ‘국민소통수석’이란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를 두고 국방부와 합참은 “군사외교력이 빛을 발한 사례”라고 자화자찬했다. 낯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황당한 발언이 이어져 공분을 사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청와대 참모나 국방 당국만 탓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으나 국민의 눈에는 부족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 속에는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엿보이지 않는다. 군이 나름대로는 대응을 잘했는데도 불가항력으로 당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 대신 국민을 향한 사과는 국방장관이 했다.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감염은 불가항력이 아니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였다. 힘들게 쌓아올린 국가 위신을 떨어뜨리는 국제적 망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고, 군과 참모들은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국민은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