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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난지원금 88%’ 파행,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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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소득자를 제외하고 전체 국민의 88%가 1인 기준으로 25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받게 된다. 또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회복자금 지원금도 최대 2000만원이 지급된다. 국회는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34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의 모습. [연합뉴스]

고소득자를 제외하고 전체 국민의 88%가 1인 기준으로 25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받게 된다. 또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회복자금 지원금도 최대 2000만원이 지급된다. 국회는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34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의 모습. [연합뉴스]

국민을 끝내 갈라쳤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국민의 88%는 재난지원금을 받고, 12%는 못 받는지 명쾌한 설명이 없다. 그제 34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체 국민의 88%에게 1인 기준으로 25만원씩 지원하기로 한 재난지원금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온 국민이 으쌰으쌰 힘을 내자는 차원에서 국민 위로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5개월 만에 실현된 재난지원금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형평성 논란 끊이지 않고, 재정 악화 #취약계층·영세업자로 대상 좁혔어야

이번까지 5차에 이른 재난지원금은 명분도, 효과도 없게 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원 대상자 상당수가 재난지원금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애초 국민의 소득 하위 50% 또는 최대 70%를 대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으로 재미를 본 더불어민주당이 대상을 계속 늘리면서 88%까지 확대됐다. 소득 하위 80% 지원 방안이 제시됐으나 기준이 모호하다는 반발이 빗발치자 맞벌이·1인 가구 178만 가구를 추가했다. 그 결과 보편인지 선별인지 어정쩡한 88% 기준이 나왔다.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4인 가구 맞벌이의 경우 연 소득 1억2436만원 이하 가구와 공시가격 15억원 이하 가구도 지원 대상에 들어간다. 소득이 1억원을 넘어도 공시가격 10억원이 넘는 집에 살아도 재난지원금을 받는다. 형편이 괜찮은 사람도 25만원, 그렇지 않은 사람도 25만원씩 받게 되면서 소득 역진은 더 심해진다. 25만원은 여유 있는 사람에겐 용돈에 불과하지만, 취약계층엔 한두 달치 생활 형편을 좌우할 만한 액수다. 결국 실용성도, 효과성도 떨어지게 됐다. 1차 재난지원금 당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소비진작 효과가 기껏 30%에 그친다고 분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공짜 좋아하는 대중심리를 겨냥해 헛돈만 뿌리게 된 형국이다.

이 여파로 나라의 재정 상황은 더 나빠진다. 현 정부의 거듭된 무차별적 재난지원금 살포를 떠받치기 위해 추경을 거듭하면서 지난해부터 해마다 100조원 안팎의 나랏빚이 쌓이고 있다. 이렇게 나랏빚이 늘고 있지만, 진짜 힘든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게 되면서 취약계층의 고통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확대하고 있지만, 거듭된 방역 실패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이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방역도 구휼도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재난지원금이 누더기로 전락하자 여당 대선후보들 간에도 자중지란이 극심하다. 처음부터 진짜 힘든 사람들에게 집중했으면 없었을 일이다. 이런 재난지원금 파행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