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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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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지난달 22일 경남 남해에서 계모(40대)의 폭행으로 의붓딸(13)이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의붓딸은 오랫동안 계모의 학대를 당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곳곳에서 학대 징후가 있었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그걸 발견하지 못했고, 그 사이 의붓딸은 ‘또 다른 정인이’가 돼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입양 271일 만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 결과 아동학대 살해범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올해 2월 만들어졌다. 아동 학대 살해범에게 기존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아동학대 치사죄’를 적용했는데 사형이나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아동학대 살해죄(정인이법)가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남해 사건을 되짚어보면 가해자인 계모는 개정된 법에 따라 아동학대 살해죄가 적용돼 검찰에 넘겨졌으나, 이런 학대 아동을 사전에 찾아내는 사회 시스템은 정인이 사건 전과 마찬가지로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한 계모에게 살해죄가 적용됐다. [뉴스1]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한 계모에게 살해죄가 적용됐다. [뉴스1]

아동 학대 사건의 80%가 집안에서 발생하고, 가해자 10명 중 7명이 친부모라는 것을 고려하면 학대 아동을 발견할 수 있는 첨병 역할을 할 곳은 학교다. 교사를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한 이유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 두 곳이 아니다.

학교 측은 의붓딸이 숨진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단결석도 없고, 학교에서 실시한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평소 원만한 교우관계를 보이는 등 학대 피해에 대한 의심 징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경찰 조사 결과는 달랐다. 학교는 몰랐는데 친구들은 의붓딸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경찰에서 “(의붓딸이) 평소 몸이 안 좋아 자주 엎드려 있었고 얼굴이 창백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특히 의붓딸은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2점’(평균 10~15점)이라는 상식 밖의 낮은 점수가 나왔다. 3월에 입학 후 7일간 결석을 했고, 사건이 발생한 6월에만 4차례나 병 관련 조퇴를 했는데도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학교 측 설명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시스템이 아직도 아동학대에 대해 얼마나 둔감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관계 당국이 드러난 취약점을 찾아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관심이다. 지난해 5월 맨발에 잠옷 차림으로 집에서 도망쳤던 창녕 아동학대 피해자를 구조했던 한 시민처럼 교사 등 우리 사회 구성원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장기간 학대를 당해 죽음에까지 이르는 ‘또 다른 정인이’가 더는 나오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