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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이 말하는 한명숙 "난 굉장히 엉뚱하고 간 큰 사람"

중앙일보

입력

2015년 8월 2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직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8월 2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직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도대체 한명숙이 뭐라고. 하여튼 저 끈끈한 가족애는 정말 감동적이에요.”(16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과 관련해 최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팀 합동 감찰 등 여권이 6년간 ‘한명숙 구하기’를 계속하자 한 전 총리라는 인물 자체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받고 복역까지 마친 그의 사건을 원점에서 뒤집기 위해 여권이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노무현 “내 뒤이을 대통령은 한명숙”

한 전 총리는 현재 여권, 특히 친문(親文) 세력의 원조 격인 친노(親盧)·586 진영에서 대모(代母)로 통한다. 김대중 정부이던 2000년 16대 총선에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5번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선 환경부 장관과 첫 여성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장, 이후 노무현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은 이가 한 전 총리였다.

한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전 국무총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인 스스로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나의 뒤를 이을 대통령감”으로 지목했다고 지난달 말 출간한 자서전 『한명숙의 진실』에서 밝히기도 했다.
(2021년 7월 11일 중앙일보 『한명숙의 뒤늦은 고백 “盧가 수차례 권유해 대선출마 결심”』 참고)

여권에선 한 전 총리에 대해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이를 두고 한 전 총리는 자서전에서 “많은 분이 제가 제도권에서 일정한 지위를 갖고 일하는 모습만 보셨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실 거다”라며 “사실 그 온화함 뒤에 맹렬함이 있는 걸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굉장히 엉뚱한 데가 있는 사람이에요. 생각도 못 했던 일을 막 저지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간 큰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꼭 해야 하는 옳은 일 앞에서는 겁이 없어요. 망설이지 않고 정면 대결을 하죠. 작은 일은 다 양보하지만 중요한 큰일 앞에서는 목숨도 걸 정도예요.”

2007년 9월 11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 중앙포토

2007년 9월 11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 중앙포토

한명숙 “학창시절 현실보단 환상에서 헤매”

책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중·고등학생 때 일탈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책 읽기에 너무 빠져서 현실 세계보다는 책 속의 환상 세계에서 헤맸다”며 “수업 시간 책상 밑에 책을 놓고 읽다가 들켜서 벌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중·고등학생에게는 금지된 영화 관람을 하기 위해 대학생처럼 차리고 영화관에 갔다가 들킨 적도 많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입시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연극 준비에 몰두했다고 한 전 총리는 회상했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정규 수업 테두리를 벗어난 일탈 행위를 통해 감수성과 상상력이 많이 키워진 게 아닌가 한다”라며 “나이 든 지금도 별명이 ‘호기심 천국’ ‘감격시대’로 불린다”고 밝혔다.

“의과대학 가라는 어머니 의사를 꺾고 문학을 선택한 것, 가난한 남편을 만난 것, 정치 입문, 뒤돌아보면 모두 겁 없이 엉뚱하게 저질러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유시민 “역시 훌륭한 사람은 세상과 불화”

책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역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세상과 뭔가 불화가 있어야 하는 거다”라고 한 전 총리를 치켜세웠다.

한 전 총리는 처음 정치권으로 갈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차별받는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하겠다는 것과 청렴하게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자금 불법 수수 사건으로 모든 게 무너졌다. 한 전 총리는 “나 때문에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가 엉망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초 한 전 총리는 정치자금 불법 수수 사건의 결백을 증명할 목적으로 이번 자서전을 펴냈다. 그러나 자금 공여자 한만호씨로부터 한 전 총리 여동생에게 건너간 1억원권 수표 등 결정적인 물증을 무너뜨릴 새로운 증거는 제시하지 못해 법조계에선 “이럴 거면 왜 자서전을 썼나”라는 비판 목소리가 크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엉뚱하고 간 큰 성격이라는 걸 보니 역시 수표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고 밝혔다.
(2021년 7월 9일 중앙일보 『한명숙 이번엔 진보매체 탓…“삐뚤어진 펜끝, 盧죽음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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